그리고 길자은이 나간 후 한 노년의 신사가 들어왔다. 그리고 길준은 전화기를 들어서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다.
10분후 루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년의 신사, 그리고 루가, 길준은 대화를 나눴고...그 이후 길준이 그 방을 나갔다. 루가는 전에 호두원을 만났을 때처럼 현금이 가득 든 상자를 들고 들어가서 노년의 신사와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그 셋밖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셋중에서도 길준은 가장 알 수 없었고, 루가는 더욱 알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노신사는 알았던걸까? 그건 아니었다. 노신사는 단지 길준의 부름에 응해서 온 먼 도시의 사람이었고, 루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다. 다만 그가 온 것은 루가의 옛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증오를 불태우고, 진실에 대해서 좀 더 섬뜩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
노신사가 마치 아기 다루듯 루가를 누이고 그의 귀에 깊은 잠의 바다로 가는 안내서를 읽었을 때 루가는 몸부림쳤다. 눈물을 흘리고, 먼 곳을 바라보듯 한 손길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벽을 향해서 내밀었다.
노신사는 그의 격한 반응에 놀랐지만, 모든 일이 끝나기 전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는 루가가 모든 일에 반응을 끝냈을 때 간이 침대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길준이 들어왔다.
"어때?"
"아..."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이제 흐릿했던 기억이 좀 나나?"
"이제 알겠어요.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왜 그 사람을 살려두셨어요! 사형받게 하지 않으시고!!!"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식욕이 없고, 기억이 잘 안난다기에 심리 카운슬러를 불렀을 뿐이야..."
길준의 말에 루가는 벌떡 일어났다.
"네, 이제 입맛도 돌고, 생각도 잘 납니다. 그러면 된 거겠죠. 당신한테는 상관없겠지만..."
"그렇다면 다행이군. 이젠 '마음대로' 해도 좋아. 어쨌든 다 네가 원하는대로 되면 좋겠구나...난 네가 건강하고 한나와 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야..."
루가는 문을 벌컥 열고 달려나갔다. 아마 차를 몰고 그 살인범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가 그 살인범을 죽였을 때, 길준의 두번째 복수가 완료될 터였다.
루가는 법정에 서게 될 테고, 호두원은 그로 인해서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되겠지.
길준은 만족스러웠다. 소설을 쓰던 그는 이제 자기 인생으로 복수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
시골행이 답답한 것은 아니었다. 김진건은 루가가 모는 차가 오는 것을 보았다. 아직까지 할일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길준은 그와 입씨름을 한후 루가에게 차를 몰게 한 후 이곳에 그를 버리고 가버렸던 것이다.
계좌에는 입금이 두둑히 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다를 일은 없었다.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해야 옳은 것일터.
길준은 그에게 더 이상 바깥세상과 연계될 일이 없게 될거라고 했다.
그래서 진건은 이 마을을 별세계라고 불렀다.
루가가 차에서 내렸다. 진건은 먼눈으로 그가 오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평범한 사람이니까, 더 이상 옛날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루가는 전혀 일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인물을 데리고 왔다.
"루..가?"
"네."
루가는 몸을 둥굴게 말다시피하면서 대꾸했다. 말투에는 냉담함이 온도 낮게 깔려 있었다.
"데려 온 건 형사...아니 정의인가?"
"형!"
정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굴러오듯이 진건을 향해 달려왔다.
"여긴 어떻게 왔나? 형사님?"
"형! 여기에 왜 있어요. 나랑 함께 가요."
"그래서 잡으러 왔냐?"
범죄자와 형사. 아무리 친근한 관계라고는 하지만 서로의 위치가 더 이상 둘을 친근하게 이어주지 못했다.
"아니, 형..."
"형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도망쳐요!"
정의의 입에서 쥐어짜다시피해서 나온 말이었다.
"도망쳐야해요."
"왜?"
진건은 옆모습으로 정의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옆으로 보는 눈은 째려보는 눈이라면서 계모에게 얻어맞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정상인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을 때는 항상 옆을 보았다.
"그 이야기인즉, 내 정체가 다 밝혀졌다는 말이냐?"
"형! 도망..."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가가 뭔가를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진건이 제지할 새도 없이 루가는 손에 든 것으로 정의의 정수리를 갈겼다.
퍽!
진건은 그제서야 루가가 무슨 의도로 정의를 데려왔는지 알았다. 처음부터 루가는 진건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흥신소, 깡패, 조폭, 그리고 나가요들...어둠 속에 고여 있는 악덕이란 악덕에 관련된 모든 것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던 루가.
"왜 처음부터 날 겨냥하지 않았냐."
진건의 말에 루가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기억날겁니다. 내 여동생이 끌려갈 때, 내 어머니가 끌려갈 때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던 걸..."
"아니. 난 몰랐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사과하라면..."
"사과따윈 필요없어요. 당신은 내 귀에 뜨거운 물을 부었더 그 자들과 한 패...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그리고 내 귀가 망가지도록 방치했던 병률을 도와주었던 사람. 더 용서할 수 없어."
"그럼 왜 처음부터 날 겨냥하지 않았냐.애꿎은 사람을 치다니..."
"그때는 그 사람이 말렸으니까.그리고이 사람이 당신을 구해주라고 했으니까."
"그 사람이라고..."
진건은 입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의 마음이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그의 생각처럼.
"역시, 잠시의 용도가 폐기처분 된 거군."
"이젠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이젠 당신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그날 밤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진건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죽는군. 그 날밤 그 여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