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을 풀어준게 당신인가?"
정의의 형, 아니 한때 두목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닌 남자. 김진건.
그는 천천히 아래위로 상대를 훑어보았다.
"돈자랑 하는 졸부랑은 엮이기 싫었는데?"
"...아, 그렇게 보이는군요."
솜사탕같은 미소를 날리면서 길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말 하늘을 둥둥 떠다닐법한 가볍고도 가벼운, 경박한 웃음이었다.
"당신의 귀여운 아이들 아닙니까. 도와준 건 고맙게 생각안해도 됩니다."
"반어법인가? 역설법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닐지도 모르죠."
"그건?"
"당신을 위해섭니다. 어두운 골목에서 이제 발을 빼셔야죠."
"당신, 이병률인지, 유병률인지 하는 의원하고 같은 당에 있지?냄새가 같아."
"그런 쓰레기와 같은 동격에 두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는군요."
길준은 표정을 싹 바꿨다. 달달한 얼굴에서 차가운 무쇠같은 얼굴로.
"내가 당신한테 바라는 건 한가집니다."
"뭐?"
"쓰레기와 같이 놀지 말고, 밝은 방향으로,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방향으로 가라는 거죠."
"설교하지마. 같은 쓰레기 주제에."
"쓰레긴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 진짜 쓰레기는 필요한 순간 배반하죠. 이 장독대에 올라와서 보시죠. 저기 멀리에 경찰들이 오고 있는 거 보입니까?"
"....."
"병률은 당신편이라고 했겠지만 이미 신고를 마쳤습니다. 시멘트에 묻힌 시체가 올라왔고, 병률은 익명으로 신고를 해버렸죠. 당신은 당신 부하들의 신고도 같이 받아서 부하들에게 버림도 받았습니다.
내가 하는 이야기에 동의만 한다면 이 급박한 사정에서 풀어드리죠."
진건은 이빨을 박박 갈았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절한다."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시죠."
"쓰레기 주제에 설교가 길군. 난 결정한 건 안 바꿔."
"뭘 원합니까?"
"뭐?"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 쓰레기야."
냉정함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었다. 길준은 눈에 안광이 번득일 정도로 눈을 부라렸다.
"그래. 나도 쓰레기다. 하지만 네놈들처럼 아무 이유없이 아무나 죽이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아."
"......"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참고 있을 때 말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걸 말하라고. 그럼 나는 분에 넘치지 않는 적당선에서 도움을 받을 테니까."
"...나는."
안광속에서 진건은 눈물을 보았다. 그가 단한번도 의뢰자들의 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눈물을 흘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투가, 그 눈빛이 눈물이 눈앞에서 보이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그래. 좋다. 나는..."
진건은 천천히 말했다.
"내 소문이 퍼진 고향이 아니라 다른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싶다...아무리 정다운 고향이라도 한번 쓰레기라는 소문이 퍼지면 돌아갈 곳이 못되니까."
"알았습니다...따라오시죠."
길준은 건물 밖에 있는 차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차창을 올리면서 루가에게 말했다.
"루가. 경찰들 오는 반대방향으로 차를 몰아서, 사무소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