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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잠들었던 한나는 어느 방에서 깨어났다. 그동안 자신이 있던 방이 아니었다. 그리고 옆에는 오빠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오빠!"
"오랜만이지?"
어색한 얼굴로 루가가 천천히 말했다. 귀가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속삭이는 목소리는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동안 잘 있었니? 그놈들이 나쁜 짓은 하지 않았지?"
"오빠...정말 보고 싶었어."
"잘됐다. 여기에서 한동안 지내면 괜찮아질거야."
"어? 내가 어디 아팠나?"
길준이 안으로 들어서려다 잠깐 밖에서 기다렸다. 문안으로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를 위해선 저 두 사람과 다소 거리를 둬야 한다.
"어제 감기 걸렸다고...이 요양원에 있던 사람이 ..."
뜨문뜨문 루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어로 하는 말이라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동생 한나는 흥분하면 한국말, 영어, 타갈로그어를 막 섞어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숨어서 뭘 엿들으세요?"
"미정씨."
공무원 채미정은 평범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공무원을 많이 뽑았던 2007년도에 입사하여, 2번의 전출, 사회복지과 자격증 취득 등으로 현재는 동에서 사회복지업무를 맡고 있었다.
사회복지업무를 맡으면서 그녀는 분담으로 이 요양원을 맡게 되었고, 그런 인연으로 준구, 길준과도 안면을 텄다.
물론 죽은 윤희와는 친분이 있는 트위터리안이기도 했다. 다만 그녀가 죽고 난 후엔 충격을 받았는지 트위터를 닫아버렸다. 그녀는 길준의 전체를 알 수 없었지만 여자의 직감으로 그 날 사건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듯 싶었다.
"할 말이 있으시면 들어가서 하셔야죠..."
미정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 어리석은 여자.
길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타갈로그어로 이야기해버리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어제도 절 초대해놓고 번역 시키셨잖아요. 후후. 진작 소개 좀 시켜주시지. 그렇게 예쁜 애가..."
"애가 예쁘죠? 어머니도 미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요?"
미정의 얼굴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모든 일이 고르게 힘을 분배해야 한다.
그건 공무원이 아니라도 마찬가지.
"저애들은 혼혈이랍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인가요?"
"어제 들어서 알고 계셨겠지만 필리핀, 타갈로그계죠."
"그럼 부친은?"
"꽤 한국에서 잘 나가는 직업인이랍니다."
"인지를 안 했나요?"
"본인들은 법적 문제는 전혀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미정은 담백한 성격이라, 길게 이야기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렇게 대꾸한 후 나가자, 길준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일은 정해진 것이다. 나머지는 미정과 털보, 그리고 정의가 알아서 해주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안되면 또 돈의 힘을 빌려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