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린 상사가 뭐냐고 묻던 정의의 얼굴을 그녀는 다시 한번 떠올렸다.
뒷돈을 받아 챙기는 자가 저 사람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던 그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정의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안락의자에 편안하게 눕다시피했던 길준의 말에 은미는 깜짝놀랐다.
그가 있는지도 모르고, 평소에 자신이 잘 있던 서재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곳은 처음에 길준이 우울증과 망상증세를 보였을 적에 상담가들과 있던 자리였다.

"놀랐네요. 설마하니 여기 계실 줄은 몰랐어요..."

"여긴 내 집인데요?"

약간은 불퉁한 그의 말에 은미가 피식 웃었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항의하듯이.
오래간만에 보는 그의 편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조심해야 할 지도 모르는 얼굴이기도 했다.
복수가 보람이라는 남자가 편안한 모습이라니...

"하여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제가 도움이 필요한지 아셨죠?"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니까요. 기억해두세요. 복수가 필요한 곳에는 제 눈과 제 귀가 항상 따라갑니다. 혼자서 행동하지 마세요. 잘못하면 당신도 준구씨처럼 콧대가 내려앉을 겁니다..."

그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지경이 받아야 할 금괴 트럭이 발견되었다는 거지요. 차라리 황금 세례를 받고 죽었으면 좋았을 걸...흙더미에 깔리지 말고..."

"그럼 역시 그 사건은?"

"조금은 내 도움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군요."

"...지경씨가 첫번째 목표였었군요..."

"뭐, 부인은 하지 않겠습니다...하지만 자초한 거죠."

"그래서,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나요?"

"병률과 지경, 그리고 호두원, 명준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했으니까요...절반쯤은 당신의 공이지만. 물론 내가 하면 더 잘했겠지만."

"...잘난 척은."

은미가 내뱉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경멸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환영에 시달린다니 어쩐다니 하면서 사람 마음을 들었다놨다 했던 주제에, 이젠 꼴같잖은 복수귀의 모습이라뇨."

"...복수귀."

길준이 잠시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사건이 이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좋았을 겁니다...그리고 지금도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하지만 그 유령은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 뿐. 내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이 일이 처리되고 나서도 그 유령은 내 속에 살겠죠. 아내의 유령이 사라지는 날은 없을 겁니다. 영원히...그녀가 날 배반했더라도..."

"배반? 언니가 그럴 리가 없어요!"

사촌언니에 대한 가슴아픈 추억이 있는 은미였다.
은미의 비명같은 말에 길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장 믿고 싶지 않은 건 납니다. 하지만 이 복수의 원을 복기하면 복기할수록 [그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군요...그건 내 가슴의 심장을 파먹고 사는 동물같은 겁니다..."

"...도대체 그 증거가..."

"언젠가 보여드리려고 했었죠....오늘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까? 아주 기가 차고 슬프고 어이없는 교통사고같은 이야기랍니다...어설픈 한 남자의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