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내 병률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재미있는데?"

"......"

은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남자와 맞대결 하는 건 힘든 일이다. 언니를 잠시나마 사로잡았던 남자이고 자신에게도 한때 햇빛같던 사람이라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지금 웃고 있는 사람은 과거의 그 사람의 껍질일뿐이다.

"아직 회기 중이라는 거 잊지 않았겠지?"

"아..."

정의가 자신의 눈앞에서 도둑을 놓친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똑똑한 정은미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

"난 의회의 볼일이 있어서 나간다. 내가 임기 다 채우고 나갈 때쯤이면 조용해질거야. 너희들이 뭐라고  떠들건 아무도 관심이 없을 거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깥으로 간다고 해서 오해할까 미리 말해두겠는데, 그런 일은 있었던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어. 정의, 난 네 아버지를 생각해서 너한테 부탁한 건데 네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날 해꼬지하려는 세력이 제법 있는 모양이야. 하긴 나도 위원회에서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지명받았으니...그런 정치인이 없다면 이상하겠지."

날카로운 비웃음을 던지며 병률은 헬스장을 빠져나갔다.

"실패했어요. 그걸 간과했던 제 실수예요."

정의가 말했다.
은미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잊어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 일들이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에요. 우리가 저 사람을 끌어낼 수 없다면 저 사람 스스로 끌어내지도록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정치인 중에 아는 사람 없으신가요?"

"...그다지요."

정의가 한숨을 푹 쉬었다.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는 기묘한 선문답을 앞에 둔 심정이었다.

"은미씨는 좀 아실 것 같은데요?"

"...한때 같이 있었으니 저 사람이 아는 사람은 제가 아는 사람과 다 겹쳐요. 거기다가 다 저사람과 같은 선이라서..."

"이럴 땐 신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집니다."

정의가 말했다.

"제가 은미씨 이야길 듣고 조사를 다 했을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경찰, 형사가 내 천직이다. 이 일에 매진해서 대한민국을 선량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라고요."

"아동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요."

은미가 밝게 웃었다. 정의는 우물쭈물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 곁 의자에 앉았다.

"근데, 방금 생각났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편이 되어준다면 오히려 역공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하지만 가능성은 0보다는 높겠죠."

"그 사람이 누굽니까?"

"가린 상사로부터 매달 꾸준한 정치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여당의 총수 호두원, 그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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