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은 근처 여관 침대에서 몸을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계속 악몽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윤희가 죽어버리는 건 그의 계산 밖이었다. 모 국회의원에게 받은 자료까지 윤희에게 보내고 난 후, 그는 덜덜 떨면서 주변 아무 모텔촌을 떠돌았다.
똑똑.
누군가가 자신을 계속 지목하고 괴롭힐까 두려웠던 그는 하루에 한 여관, 한 모텔을 떠돌았다. 그러기를 며칠이나 했을까.드디어 마지막 여관에 들어가 떨고 있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똑똑.
노크가 두번. 그는 쉰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누구...들어오세요..."
그렇게 된 이상 더 이상 겁을 집어먹을 일도 없었다.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선생님. 앞으로 온 물건입니다."
찰싹녀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그 동영상의 다른 인물인 자기에게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을리 없었다.
그냥 얌전하게 있을걸...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여관의 여주인이 들고 온 건 조그만 카드와 꽉 잠겨진 작은 통이었다.
-지금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보냅니다. 사과씨 추출액입니다. 잠이 아주 잘 올 겁니다...-
사과씨 추출액은 청산가리 성분이 있다. 그걸 농축해서 넣은 거라면 독약인 것이다...
문제는 죽음보다 더 한 의혹이었다. 누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가...
바짝바짝 말라들어가는 자신에게 이건...
"예...알겠습니다..."
결국 여기도 털리고 말았구나...조지경은 허탈감에 몸을 떨었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차라리 로얄 호텔에서 시키는대로 조용히 있을 것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말라들어가는 건 같았을 것이다...
똑똑.
이번에는 좀 묵직한 노크였다. 문앞에 망연자실 서 있는 그에게 한 남자가 편지봉투 하나를 건넸다.
"최후통첩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경은 편지봉투를 열었다. 거친 필적에 사무적인 글투였다.
-로얄 호텔의 감금생활을 잘 이겨내신 걸 축하하며. 약속대로 선생님의 포부에 맞는 금액을 준비했습니다. 현재 계신 여관에서 6시 방향에 이 편지를 보내는 사람 앞으로 된 트럭 30대에 금괴가 꽉 찬 컨테이너 30개를 보냅니다.선생님의 여생에 후회가 없기를 빌면서. 이만..., 아. 모텔촌을 떠돈다고 다가올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걱정되신다면 그 컨테이너 받는 걸 포기하시고 거기에만 계시겠다면 안전은 보장해드릴 수 있습니다.-
지경은 눈앞의 금괴를 그려보았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비참한 인생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금괴를 안고 죽자.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털린 거 마지막으로.."
반쯤은 자포자기한 지경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6시 방향에는 대형마트가 입점했었던 폐건물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차장이 있던 꼭대기층에 트럭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길준은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지경은 금방이라도 트럭들이 사라질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내 금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