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식욕이 없었다. 점점 어지러워지고, 메쓰꺼웠다.그날 커피때문인가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모임에 모인 것은 50명.
페북 친구들이고 트위터친구들이었지만 하나하나 이름을 외우긴 힘들었다.
이준구라는 친구가 케이크 뷔페 자리를 마련한 터라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즐겁게들 먹었다.
미정씨를 찾았지만 그 전에 그만 길준을 만나고 말았다.
"저...실례지만."
그녀의 팔을 붙든 손을 뿌리치며 윤희가 가늘게 목소리를 냈다.
"혹시 절 아시는 분인가요?"
아니, 남자라고 하자. 이름 모를 남자.
그 남자는 모자를 깊숙히 눌러쓰고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실례합니다. 사람을 잘못 봤군요. 제가 아는 윤희씨라면 이 정도로 마르진 않았을테니..죄송합니다."
"길...준씨?"
"한때는 그런 이름으로 불린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피싯하고 가볍게 웃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지금은 좀 다른 일을 하고 있지요. 부군께는 부디 비밀로 해주시길. 술에 취해서 또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요."
"잠깐만요...길준씨. 어떻게..여기에..."
"부군께 여쭤보시죠."
일부러 고풍스런 어투를 사용하는 건지, 길준의 어투는 모호하고 몽롱했다.
"잠깐,잠깐만요."
숨을 헉헉 들이쉬면서 윤희가 가려는 길준의 팔목을 잡아 붙들었다. 남자인 길준이 잠시 놀랄 정도의 힘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당신을 찾았는데!"
"고맙게라도 생각하란 말입니까?"
길준의 눈매는 잔혹할 정도로 매서워졌다. 그는 마치 얼음빙벽을 깎아놓은 것처럼 냉정하게 ,힘이 빠진 윤희를 밀쳤다.
"당신들이 날 찾으려한걸 내가 고마워해야한다니...죽이지 않은거니 다행으로 여겨라. 이 말인가요?"
"무슨 말이죠? 어떻게 그런 말을!"
"제가 할 말은 다했습니다. 더 부족한 건 여기 레지던스에 있는 한 불청객에게서 들으셔야겠군요. 그 분은 당신도 한번 뵌 적 있는 분입니다. 그 분이 당신에게 이야기를 한다 한들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하여간 당신 부군은 잔인한 사람입니다..."
"병률씨한테 문제가 있다면 그건 나한테도 있어요! 부부는 일심동체라 한쪽이 잘못한 건..."
"그건 그 인간입에서 들어야 할 말입니다...어떻게 보면 당신도 피해자니까..."
길준은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미정을 불렀다.
"미정씨. 아직 안 왔으면 자리를 옮길까요? 웨스트호텔 다이아몬드 룸에서 만나죠..."
"길준씨!"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아니, 설사 하나 있다하더라도 그 말은 끔찍해서 못 하겠군요. 아니. 기왕 온 거니 이야기해도 될 것 같군요. 그 작자를 대신해서 죽을 자신이 있습니까? 윤희씨? 그 정도면 용서받을...수...아니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암, 그렇고 말고."
그 수수께끼같은 말을 던진 채 길준은 다른 장소로 옮겨갔다. 그것도 모르는 페북인, 트위터리안들은 달콤한 케이크에 제철과일을 곁들여 한참 환상적인 커피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