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저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이다. 먼 아주 먼 곳에, 내 손이 닿지 않는 보석.
그것이 천국이고 낙원이다.
루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가 완벽하게 들리는 건 아니지만, 귀가 아주 멀어버린 건 아니었다.
이 말은 그의 고용주인 병률도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이 귀에 익어버려서 그런가 루가도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처럼 생각되곤 했다.실제로 그랬다. 동생이 끌려가면서 지르던 비명은 아직도 귀에 선했다.
그때 그는 그녀와 자신이 단지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빌린 빚을 갚기 위해서 그 꼴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동생도 무사하고 자신도 이제 귀가 좀 들릴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동생을 못 만나고 있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길준을 재촉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자는 거기 내려놓게."
길준의 부탁(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었다. 길준은 간절한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라고.)으로 그는 상자를 어떤 남자를 만나러 갔다. 로얄 호텔 레지던스 808호.
"혼혈인가?"
남자는 늙그수레했지만 강인한 인상이었다. 마치 돌을 포크레인으로 두들겨 깨서 만든 듯한 얼굴에 멋은 없었지만
약간 흰자가 검은자보다 많은 그 눈은 그가 그 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듯 번쩍였다.
"......"
그렇다면 어쩌겠냐고. 묻진 않았다. 루가는 그저 고개를 한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 상자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어쩌면 일본에서 한 때 유행했다는 택배매춘일지도 몰랐다.
물론 복수를 준비하는 남자답게 선량하지만은 않을 그 남자를, 루가는 신뢰했다.
"잠깐 거기 앉아있게. 의외의 선물까지 들어오다니 별일이군."
수신인은 가린상사.라고 적혀 있었다.노인은 빙긋 웃었다.
그 택배 상자를 열면서 노인은 별다른 도구 없이 맨손으로 꽁꽁 싼 테이프를 뜯어냈다.
다 뜯어낸 후 노인은 상자를 열지 않고, 루가에게 말을 걸었다.
"몇살인가?"
"......"
"하긴 잠깐 있다갈 사람한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니군."
그는 후하고 웃고는 택배를 한켠으로 치웠다. 잠깐 본 것만으로도 루가는 그 택배안에 수많은 현찰들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남자 보통 남자가 아니다!
루가는 직감으로 느꼈다.
"당신...누구?"
"...나?"
노인은 루가의 손을 잡아당겼다.
"우리나라 사람이 확실히 아닌 모양이군. 하긴 그 편이 비밀 숨기기에도 좋겠지만..."
어쩌면 낙원은 손이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갈급함을 만든다는 점에서 지옥에 한없이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루가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