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준의 아침은 늘 그래왔듯이 닭가슴살과 퍽퍽하기 이를 데 없는 단백질 보충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로스쿨이 활성화되기 전, 검사임용을 받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래도 민변쪽과도 친해놓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이란 친목의 동물이라, 아는 인물이라면 한 수 접고 들어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는 민변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인간적인 검사쪽이 상대에게 빈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민변의 변호사들 중 대부분이 그런 걸 지향하고 있으니 어설픈 정의감에 불탄 로스쿨 출신 민변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만...
"말씀하시죠."
민변이 아니라 상대가 경찰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건만 사태는 그가 수습하기 어려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상대는 그의 아파트 헬스장을 급습했던 것이다.
"미제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들어온 말에 검사는 잠깐 시계를 보았다. 미제사건이 한 둘이냐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병률이 부탁한 친구다. 앞으로의 출세건을 보장할 끈을 지닌 의원직속계열 아니던가.
"음...그런데요?"
" 그 사장이란 남자가 수상합니다...그 집에서 몇명이 죽어나갔는데 단순 사고사로 처리가 되었어요....단순 서장선에서 막힌 게 아니라면 좀 더 윗선일텐데..."'
그 말에 길준의 말이 생각났다.
'요즘은 정의의 사도니 뭐니 하는 장난질이 워낙 많아서요. 여기서 미제사건이 있다고 덤비는 놈들이 앞으로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검사님 생각은 어떠신지...'
그렇다면 지금 눈앞의 이 친구가 정의의 사도란 말인가?
명준은 빙긋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말했다.
"나도 그 사건이 수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검사님은 알아주시는군요."
아니. 알고 있지 않았다. 황명준은 오히려 유력의원 밑에서 일을 했었다는 은미를 소개받는데 더 관심이 많았다.
병률을 통해 만난 그 의원은...
"이쪽이 정은미양이네...구면일테지? 미모의 재원이지."
"그렇습니다. 의원님."
은미는 속눈썹을 살짝 떨면서 황검사와 잠시 손을 잡았다. 부들 부들 떨리는 손, 하얗고 투명한 하얀손...
"앞으로 미제사건에 대해서 건의가 많이 들어올지도 모르네. 야밤에 폭포를 뜯어갔다는 절도 사건이라던가. 뭐 그런거...경찰놈들은 알 수가 없어서 게으른 것 같다가도 갑자기 검사한테 이것저것 들이대고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말이지...그걸 자네가 좀 알아서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랬던 것이다.
길준을 위한 지뢰를 길준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혹시 그 사람..."
황명준은 말에 뜸을 들였다.
"네?"
"인적사항이 확실한 사람입니까? 혹시 다른 명의로 살고 있진 않나요?"
"글쎄...중간에 막혀서 잘 모르겠습니다."
"주민센터에 의뢰해 주민등록 조사라도 한번 해보시죠. 미제사건과 관련된 건 내가 어떻게 다시 찾아볼테니까. 다만, 경찰신분으로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니 저도 자료를 좀 찾아보겠습니다."
------------------------------------------------------------------------------------------------------병률은 모의원의 출판 기념회에서 적당하게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윤희는 유산을 한 이후 바깥 활동을 삼가했다. 몸이 굉장히 안 좋아져서 되도록 집에서 조리하라는 의사의 말도 있었지만, 최근 그녀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몸은 어때.."
이런 뒤숭숭한떄에 아내까지 그러니 병률은 더 이상 집에서 안락함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어서와..."
꺼져가는 목소리에 병률은 더욱 의욕을 잃었다. 바로 그 점이 그를 더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더군다나 이젠 그는 윤희보다 죽은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 한잔 할래?"
그의 말에 윤희는 고개를 저었다.
"난 이제 좀 쉬러가야겠어. 당신 올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어..."
"응. 푹 잘 자."
윤희를 보낸 후, 병률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황명준의 전화로 보아 정의가 잘 나서주고 있따는 생각이 들었다.
개자식. 복수를 하건 말건 네놈한테 가망성은 없단 말이다!
병률은 방 장식장에 있던 위스키를 꺼내서 원샷해버렸다. 술기운이 오르진 않았지만 그는 술이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운에 힘입어 그는 구식 전화기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이준구입니다."
길준의 목소리였다.
"나다."
"나라니?"
"유병률이라고. 네 파트너였던 경찰 유병률이란 말이다."
"무슨 이야길 하는지 모르겠군요.유의원님, 술이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껍데기를 가지고 사는 지 모르겠다만."
병률의 눈이 히스테릭하게 천정을 훑었다. 마치 수호신이자, 망령처럼 길준의 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 돈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석을 시켜버려서 실수하긴 했지만...나 경고하는데..."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에 길준은 눈을 감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술에 취한 게 아니다. 다만 술에 취한 척 할 뿐이다.
"돈보다는 권력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길준이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넌 날 평생 못 이겨. 니 여자도 내거, 내 여자는 내거, 니 재산도 본래는 내 것."
"못 들은 걸로 하지. 넌 내게 이런 식으로 말할 자격이 없어."
"복수를 하고 싶어?"
그게 본질이었다. 병률은 알고 싶었다. 브레이크를 떼고 달리는 그 기분을, 그만 알고 다른 의원들은 꺠닫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태연한 척 하면서 주변 사람과 어울리는 그 모습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한테는 힘이 있어. 넌 그냥 사는게 좋을 거야. 내가 네가 가만히 있는데 공격하진 않을 거거든."
병률의 말에 길준은 픽하고 웃었다.
"과연..."
병률은 순간적으로 의기양양해졌다. 길준은 이내 전화를 끊었고, 그 금속성 소리가 끝나자마자 병률은 방안에 들어온 윤희를 볼 수 있었다. 지나치게 의기양양한 나머지 문을 닫아두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