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 좋고.

그는 싱긋거리면서 연신 새로 산 목티를 만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짧은 목이 터틀 넥이라는 옷을 입자 더 짧아진 느낌이랄까. 거북이라고 놀려줄까하고 여친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하지만 어째서 저 녀석이 여기에 끼는 걸까...

"오빠, 그 옷 참 잘 어울린다. 그지?"

그 녀석을 오빠라고까지 지칭하면서 모처럼의 낭만적인 여행의 흥취를 몽땅 다 깨고 있다.
아아. 내 청춘이여.

"그래. 장춘이가 옷 보는 눈이 정말 좋아...응? 근데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야? 김장춘?"

"어째서 네가 온 걸까 생각 중이다. 대구가 좀 더 가까웠으면 날려보냈을텐데."

"오, 기왕 보낼거면 마라도로 보내줘..."

섬출신인 이 녀석은 입버릇이 마라도로 보내줘.이다. 그렇다고 마라도출신도 아니건만.

"가끔은 설빔구실로 커플 브레이커 역할도 하지...다혜랑 사귈거면 우장이는 다른 여자한테 붙여주고 그래라.
어설픈 네 애인이 그 나사빠진 놈한테 가기 전에..."

선배 애인이 우장이에게 빠지는 바람에, 과내에서 우장이에 대한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여자들은 걷어채이거나 말거나 좋은 오빠. 라면서 우장이를 감싸고, 여친들이 우장이에게 환호하는 걸 본 남자들은 우장이를 미워한다. 물론 실적이 좋으니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없다. 친척들이 그럭저럭 잘 나가는 그룹의 사장들이니, 용돈 걱정 안 해도 돼 공부 잘하니 취직 걱정안해도돼...이러니 남자들이 우장이를 눈꼴시게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어째서 촌 시골뜨기놈이 밥그릇이란 밥그릇은 다 들고 먹는 건지 

"방은 더블로 써라."

우장이가 내가 쓰는 목록을 보더니 한마디한다.

"연인끼리 계속 붙여놓으면 가연성이 되니까, 너네는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

"아이 오빠두 참..."

"야. 우장. 가연성인거 알면 우리 사이에서 떨어져."

"싫은데? 넌 나랑 같이 방써야 돼. 그러니까 더블. 그리고 다혜는 싱글로."


이 빌어먹을 놈의 커플 브레이커 자슥을 치워버릴 방법이 없을까?
나는 샤워끝난 다음 머리를 말리면서 입는 옷이라고는 오로지 터틀넥밖에 없는 저 요망한 물건을 치워버릴 궁리를 했다. 설빔은 벌써 했고, 설 이후에 핑계되면서 저 녀석을 보내버릴 방법이...

"장춘아."

"응?"

"우리 룸서비스 시켜먹자."

"뭐?"

가난한 학생이 간만에 겨우 돈 벌어서 좋은 델 왔더니 이 기생충이 못하는 말이 없다!

"돈없어."

"거짓말하지마."

"설빔 샀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가 왜 이놈에게 휘둘려야 하는 걸까. 선배들의 진리를 듣지 않았던가. 우장에게 설빔을 사주는 사람은 항상 여친과 꺠어진다.

"커플 브레이커의 결말을 듣고 싶은 모양이군."

우장이 짐작한 듯 후후 웃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장렬한 역사지. 김장춘도 그게 듣고 싶은 모양이군. 그래. 내가 김군을 위해서 특별히..."

다 들으면 안된다. 
나는 발로 우장이의 코를 걷어찬 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엎어진 우장이의 팔을 꺾었다. 그정도로 내 사랑은 지극했다. 다혜는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

"오빠? 무슨 소리가 들려서 왔는데 괜찮아?"

"으...다혜야."

별것도 아닌 공격에 엄살을 피우는 우장이를 막기 위해서 나는 손으로 그녀석의 입을 막았다. 우장이는 꽉 깨물었고, 그리고 동시에 우장이가 이렇게 외쳤다.

"다혜야. 장춘이가 룸서비스 시켜준대!"

"어, 정말? 장춘 오빠 정말이야?"

"으..응."

룸 밖에 있던 인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원망스런 눈으로 우장이를 노려봤다.

"이게 다 뭐냐. 우장."

"뭐긴 뭐지 미리 예약해놨지.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아, 다혜방에는 프로슈토랑 멜론 주문해놨다. 혹시 그거 먹고 싶으면 내가 특별히 다혜방을 방문할 기회를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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