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이 터졌다. 벌써 몇번째인건지. 다행히 내 집은 화재경보기가 있어서 급하게나마 처리할 수 있었다.
오븐이 오면 안되는 집이라도 있나?
그렇게 몇번이나 불조절을 했는데도 터진다면 그건 오븐 문제겠지만...
오븐을 몇번이나 갈았는데 이렇다는 건 내가 오븐 다루는 기술이 없다는 거겠지.
이래서야 평생 빵이나 케이크는 먹지도 못하고 푸딩만 먹게 생겼다.


물론 푸딩이야 내가 수준급으로 만들긴 하지만
잘 만든 푸딩은 잘 익은 귤처럼 탱글탱글하고 촉촉한것이 생크림을 얼마나 넣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리고 탄력있는 그 모양이 꼭 먹어달라고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다
툭하고 건드리면 찰랑하고 접시에서 요동을 친다.
그래...그렇지. 푸딩이라고 해서 나쁠 건 없지만...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푸딩 레시피를 어디다 뒀더라?
아, 여기 있군. 하지만 역시 나는 푸딩보다 빵이나 케이크가...


빵은 멋지지, 비스코티나 깡파뉴...재료가 빈약해도 나오지 않는 그 훌륭한 질감들.
케이크는 더더군다나 멋지다. 시트를 오븐에서 굽고 나오면 거기다가 부드러운 질감의 생크림이나 매끄럽고 입안에서 기름진 버터크림을 발라주면, 아까전까지 갈색이었던 것이 색색깔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 위에 싱싱한 과일 절임을 올려주고, 다른 크림으로 장식까지 하면...
아아...그 얼마나 멋지단 말인가?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 푸딩처럼 탱글 하진 않지만, 그 풍부한 질감이 사람을 반하게 한다.
입안에 넣으면 그 층층이 바른 크림의 농후한 맛과 그 맛과 어우러지는 은근한 부드러움.
푸딩처럼 질감이 항상 부드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루가 천천히 입안에 바스러지면서 남기는 그 부드러운 맛.
얹은 과일맛과 시트 사이의 크림 맛, 그리고 빵의맛이 어우러져 푸딩은 저리가라 하는 맛을 남긴다.
언젠가 한번 푸딩파와 빵파와 케이크파로 나뉘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못 말리는 푸딩파 친구도 거기에 대해서는 인정한 적이 있던 것이다.

하여간 빵도 안되고, 케이크도 안되니, 제과점 시폰 케이크라도 사와서 크림을 치덕치덕 발라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채식주의자들이 말하는 오븐 안써도 되는  빵을 만들까..
아니 그건 혁명이 아니라 반역이다!
오븐은 오븐이어야 하고, 빵과 케이크는 그 불길을 거쳐야 진정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거니까.
좋다. 몇천개의 오븐이 불타더라도 언젠간 옳은 오븐이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야지...
우선은 푸딩부터 다시 만들고...
레시피가 어디 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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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5-02-27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저는 푸딩을 굉장히(!) 잘 만듭니다.ㅎㅎㅎㅎ
근데 안 만든지가 벌써 7년이 다 되어가서 아직까지 잘할 수 있는지는 잘 모 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