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정명훈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박현정씨가 사직한 이후부터 거기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솔직히 말해서 정명훈씨가 잘못한 게 있다면 거기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이미 난 거기에 대한 호불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론이 지나치게 몰고 가는 것 같단 생각은 하지만.

거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에 듣고 있는 말러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다.
올해로 4년차가 된 내 차는 정비 중에 안테나가  빠졌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을 한동안 들을 수가 없었는데, 며칠 전 
채널을 맞추다가 다시 kbs 클래식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 말러의 천인을 듣다가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던 터라, 클래식 방송에서 나오는 음이 풍부하고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극적인 음악을 듣고 다음엔 이 음반을 사야지! 했다.
근데 끝나면서 아나운서의 멘트 말러의 '거인'입니다. 라고...

들으면서 천인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성악쪽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던 터라, 또 말러라...
괜찮을까 싶었다. 아, 괜찮을 거야. 방금 전에 들은 그 곡 굉장히 아름다웠잖아? 어디 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도 괜찮게 지휘하고 좋을 거야...
말러...나는 잘 모르지만, 좀 아는 사람들은 클래식의 블록버스터. 라고 말하는 작곡가 아닌가...
연주하기에 따라서는 별로에서 최상까지 나올 수 있는 그런 작곡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라디오 방송에 나오는 그 필하모닉을 모르니까, 우선은 들어보자!

그래서 내가 간 곳은 온갖 클래식의 하위부터 최상까지 나오는 유튜브.
고맙다! 유튜브야.
아름다운 곡이니까 국내 연주단도 잘 하겠지. 하고 틀었는데 뭔가 굉장히 심심하고 조율이 잘 안된 느낌.
(어디 필인지 모르니, 생략. 국내 연주는 -대학생 연주라도 생으로 들으면 굉장히 좋지만-그럭저럭 잘 들어왔는데 말러...는 좀 무리였나보다...)
그래...뭐, 잠시 내 착각이었나보지.
그리고 두다멜의 거인을 틀었다. 

내가 가진 두다멜의 이미지는 하나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출신,  그리고 그 강렬한 곱슬머리...
한번도 지휘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CD만 수집하고, 그나마도 굉장히 제한적으로 듣는 사람인데다가 최근까지 지휘자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근데 두다멜의 지휘가 시작되는 순간 울려퍼지는 거인.
그건 내가 라디오에서 들은 것 보다 더 아름다웠다. 은색실을 곱게 뽑아내는 느낌이랄까.

두다멜은 내가 알기로 젊은 세대 중에서 촉망받는-이미 촉망받을 나이는 지났나?-지휘자이고, 분명히 듣는 순간 느낄 수 있는 열정과 감성, 재능이 있는 지휘자다. 듣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색깔을 지녔는지, 그 자신의 비젼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지.


정명훈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개 안되는 음원만 들어도 색깔이 분명한 지휘자다.
내가 아는 것은 젊을 때의 그가 두다멜같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음원에서도 그는 그 하나만으로도 빛이 난다.

진중권의 비겁함(?- 인정사정없이 남을 잘 까내리다가 자기 누이가 서울필이랑 연관이 좀 있으니 필봉을 좀 다른쪽으로 돌리는 것 같은데...그게 더 인간적이다. 진중권이 인간적으로 보이니까. 난 전에는 진중권은 인간도 아닌줄 알았지. 물론 진중권의 논리는 약해보이지만 그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다.)도 충분히 대응이 되겠지만.
정명훈은 실력으로 이미 자신을 증명했다. 오자와 세이지의 연주(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판본은 
내가 다른 연주와 비교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굉장히 아름답다.)와 따로 비교할 필요도 없지만.
충분히 흑색선전을 이길 힘을 지녔다. 물론 그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직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한국의 사이먼 래틀, 두다멜, 로린 마젤, 을 따로 원하는가?
이미 있다. 아직까지 아바도같은 혁명가같은 정신은 가지진 않았지만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다만, 다음 세대의 지휘자는 그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 충분히 뛰어나고,  충분히 정치적이면서도 거기에 자유로울 수 있고, 사생활과 공적인 생활에서 공정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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