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는 그 많은 금괴들이 화물트럭에 실려 옮겨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야 이 모든 일이 어쩌면 나라 하나를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젖어 들었다.
"여기서 뭐해?"
털보가 다가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병률이한테 하고 있었군,"
털보는 그렇게 말한 후 그녀에게 금괴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애써 냉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까지 따라온거면 이야긴 뻔하지 않아?"
"당신들은 정말..."
공포감에 젖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뛰어난 게임판이 그냥 게임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초심자의 감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병률이하고, 저 길준인가하는 녀석하고 둘 사이에 두고 저울질 하는 걸로 알고 있긴 한데..."
"......"
그녀는 애써 가장했던 냉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내가,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여요?"
"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털보에게 그녀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 이것 보세요. 털보씨.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럼?"
"이건 본래 일본이 국내에서 채굴한 금을 가공한 거에요.즉 엄연히 국가재산이죠. 우리가 이렇게 발견해서 들고 가긴 하지만, 몰래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갈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요. 길가에 CCTV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요?
그리고 더 나가면 이건 정치를 좌우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요. 더더군다나 도둑맞아도 신고도 못하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털보는 그녀의 손에 금괴를 꼭 쥐어주었다.
"그래도 한개 정돈 남겠지. 기념품이라고 생각해둬."
"그게 무슨..."
"길준이한테 들은 이야기야. 내 동생이 여기저기 폐를 끼치고 돌아다니니 형된 입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어. 그동안 신세도 많이 지고 했지만, 이젠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난 나대로 동생이 한 일을 처리해야지.
내 본래 직업의 의미를 다시 찾으러 갈 시간이야."
"그럼?"
"이젠 못 본다고 생각해둬. 미운 놈이 금괴 하나 쥐어주고 사라졌더라...그 정도 의미만 남아도 좋은 거라고 생각해."
털보는 그 속의 말을 다 털어놓진 않았다. 어머니가 들려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아버지는 헤어지는 날 어머니에게 금괴 하나를 쥐어주고는 그렇게 떠났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속의 비극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털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부터 일어날 싸움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 여자에게는 하지 않으리라. 다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만 눙쳐두자.
그는 그리고 트럭들이 출발할 때 길준 모르게 한 트럭에 얻어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