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길준은 증거를 없애야 한다는 걸 잊지 않았다. 산들바람 요양원에 대한 그의 대처는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다. 환자들 사이에서 원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불평이 나돌고, 길준의 손이 닿은 기자 몇 명이 몰래 병원을 취재해갔다.
길준의 인맥은 놀라웠다. 한때 소설을 사랑하는 평범한 경찰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일에 대해서는 은미조차도 놀랐다. 웬만한 일은 보고도 놀라지 않던 그녀는 길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캐물었지만, 길준은 입을 다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병률은 산들바람 병원 비리사건이 언론에 터지자 크게 당황했다.
더더군다나 알려온 바에 의하면 길준과 길준의 형이라는 준구가 핵심명단을 빼갔다는 것이었다.
“당신 바보인가?”
독대한 원장을 향해서 병률이 분노를 터뜨렸다.
“그 놈이 어떤 놈인지 알면서 그 자료를 넘겨줘?”
“...하지만 비상벨도 울릴 수 없었고...”
금괴에 넘어가 이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원장은 순간적인 탐욕으로 일을 처리하려다가 크게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병률도 할 말이 없었다.
평범한 경찰, 그것도 비번인 날에는 한가롭게 소설이나 쓰던 놈이 도대체 어디서 인맥을 구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짐작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병률이 사무실 책상에 손을 얹었다. 원장은 자기 책상에 올라와 있는 손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놈들은 자기 정체를 드러냈으니,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몸을 빼는 게 좋겠어.”
병률의 손에 힘줄이 불거졌다.
“돈은 이쪽에서 대줄테니, 멀리 하와이라도 갔다오는 게...”
“...병원은요!”
“내가 윗선에 말씀드려서 처리를 해주지. 조용해지면 다른 곳에 원장으로 보내줄테니 너무 걱정은 말고...”
병률은 그렇게 말하면서 원장을 보냈다. 물론 길준만큼이나 병률도 증거를 없애야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 3달후 원장의 시체가 콘크리트에 들어간 채로 울산 앞바다에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