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 요양원에 도착하자마자 길준은 안내 없이 원장실부터 찾았다.
“먼저 들어가시죠.”
길준이 떠밀듯이 준구를 문을 열고 들어가게 했다. 사무를 보다가 갑자기 불청객을 만난 원장은 깜짝 놀라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원장실은 호사롭지는 않았지만 손님이 많은 병원답게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원장도 진료를 보는 듯, 목재 탁자 옆 등받이 없는 의자와 원목 의자가 양쪽에 놓여 있었다.
아마 누가 진료를 받았다거나, 아니면 사무 일로 잠시 원장을 만나러 왔던 듯 의자에는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준구는 그 온기에서 뭔가 모를 모순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신들 누구야!”
그 말에 이제 그는 길준의 얼굴 표정 2라고 붙여야 어울릴 것 같은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 참, 1년전에 만난 사인데도 얼굴을 까먹었군. 노인네하고 나 기억 안 나나?”
“1년전? 1년전? 아, 그 미친 놈들!”
“돌팔이한테 그런 소리 듣기는 좀 그런데.”
길준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원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때 일로 벌금도 안 받고, 그냥 넘어갈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병원이야. 제대로 일을 했는데 어째서...”
“여기가 제대로 된 병원?”
길준은 쾅 하고 원장의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환자들한테 동의없이 마약류를 먹이는 게 병원인가? 서류위조를 해도 걸리지 않도록 정치인이 뒤를 봐주는 그런 병원이?”
“당신이야 말로 왜 그러는 거야. 치료는 잘 받았잖아!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시 입원을...”
“내 말 잘 들어.”
길준은 볼펜으로 의사의 손등을 찍어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살기가 풍겼다.
“난 그때 그 사람이 아니야. 지금은 그냥 넣을 수도 없는 당신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 뒷배봐주는 놈들한테도 난 상대로서 무거울 수도 있어.”
“...협박은 작작해. 경찰을 부를테다.”
원장의 싸늘한 표정에 길준이 언제 가방을 들고 왔는지 검은 가방에서 금괴 하나를 꺼냈다.
“난 병원의 비리를 알고 있어. 이대로 쫓아내면 물론 나가기는 하겠지만...비리를 폭로할거고...만약에 내 일에 협조해준다면?”
“준다면?”
“매달 1번 금괴 2개를 보내드리지. 일년이면 금괴 24개. 매장량도 엄청난 곳이 있거든. 그걸 당신이 죽을 때까지 보내드리지. 정치적인 외압도 막아줄 수 있어. 다만 내가 바라는 건...”
“바라는 건?”
의사가 마치 환각을 보는 듯한 태도로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이 병원에 마약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명단을 구하는 거야. 내게 명단만 넘겨주면 돼. 그리고 한가지 더.”
“.....”
“얼마 전에 여기 한 노부인이 들어왔을 건데, 그때 그 노부인을 데려온 놈들 인적사항도 같이 보내주면 좋겠군.”
“노부인?”
“정금실이라는 여자야. 아마 여기 기록이 있을 거니까...”
“그런 명부는 없...”
“닥쳐!”
길준이 다시 유순하게 말했다.
“여기 말고는 없었다는 걸 확인했어. 그러니까... 내 말 듣는게 좋을 거야. 시간은 없어. 1분안에 결정해.”
그리고 1시간 후, 그 요양원에서 두 사람이 나왔을 때는 두툼한 1호 봉투가 20개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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