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놔."
나직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길준이 말했다.
"드디어 가면을 벗으셨군."
털보가 피식 웃었다.
"로만 칼라가 아니라도 쓸모는 있는 것 아닌가?"
"닥쳐."
길준의 으르렁거림에 털보는 파안대소했다. 그리고 지윤은 살짝 쓰디쓴 표정으로 천천히 길준의 옆에서 벗어났다.
"나한텐 없습니다."
"...그럼 왜 온 거지?"
털보와 길준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나왔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이미 어떤 사람인지 봤잖아."
털보의 말에 길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말을 지윤이 삼켜버리듯 대꾸했다.
"아니."
"아니라고?"
"난 아직 그 뒷면을 보지 못했었습니다. 보물 건 아니라도 난 어쩌면 당신의 한면만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뒷면을, 신부인 나로서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그 부분을 나는 꼭 봐야했습니다."
길준은 마치 얻어맞은 표정으로 멍 하니 있었다. 지윤은 말을 이었다.
"당신은 처음에는 내 구원자였습니다. 죽어가는 날 살려냈죠. 그리고 두번째는 명령자였습니다.목숨을 살렸으니 그만한 댓가를 치르라고. 그리고 세번째는 악당이었습니다. 자신의 복수의 목적을 위해서 내 직위를 내놓으라고요. 내 성직을.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당신의 다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 보물에 과연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만약 아니라면 난 형이 당신 편을 들더라도 그 마지막 실마리를 내어놓지 않을 겁니다."
길준이 양손을 꽉 쥐는 것을 은미는 보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지윤의 목으로 손이 옮겨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가 아는 한 단련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길준의 악력은 꽤 센 편이었다,
"당신은 정에 의지하는 걸 싫어합니다."
지윤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하지만 자기 수단을 위해서라면 정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죠. 사실 보편적으로 모두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
"아직은 내가 필요할 겁니다. 성경책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부탁할 게 있습니다."
"뭡니까."
"적어도 이 부근의 배고픈 학생들과 노숙자분들에게 우리들의 친분이 유지될 동안만이라도 지어놓은 복지관에서 급식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 손으로 직접. 그 황금은 아무나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보통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이를 악물고 반대로 생각하려고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