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라는 여자를 혹시 알고 있나? 난 그녀를 잘 알아. 자네도 그녀를 만나보면 얻을 게 많다는 걸 알게 될거야...다만,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팔에는 은여우 목도리를 걸친 채 약간 모가 나는 얼굴을 내게 돌렸다, 그리고 내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던 선배를 향해서 상냥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사라지기 전에 선배는 허둥지둥 자리를 피했다.
어째서 이런 유한마담에게 사마귀라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붙었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키가 여자치고는 큰 편이긴 하지만 사나워보이지도 않고, 여유있는 생활에 대한 반발심이 빚어낸 완벽한 몸매. 그리고 풍족한 식생활을 운동으로 극복한 듯한 성형자국하나 없는 날카로운 턱선.
"늘 있는 이야기죠."
그녀가 우아하게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내 주위엔 별로 좋지 못한 이야기들이 떠다녀요. 아까 전의 그 남자분도 어디선가 떠돌던 이야기를 주워들은 걸거에요. 하지만 아쉽네요."
그녀가 눈밑의 점에 손가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건 눈물점이에요. 내 눈에 눈물이 비치는 때 그 눈물을 만든 사람은 항상 불행을..."
그리고 살롱 밖에서 요란한 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앰뷸런스를 불러! 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섞였다.
"내 별명은 그래서 생긴 거랍니다."
그녀는 그렇게 눙쳤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모를 수는 없었다. 그건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그녀는 뮤즈들의 살롱주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뮤즈들은 변덕스럽다. 어느 날은 이 시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가 저 음악은 듣기 싫다. 라고 말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반대로 말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 중 몇명만을 추려 진정한 뮤즈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라고 해서 딱히 특별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규칙적인 걸 선호하곤 해서 그들의 살롱에서 나오는 것들은 딱히 특별한 구석이 있지 않은 평범한 것이 되곤 했다.
하지만 뮤즈 사마귀는 다르다고 선배는 날 이끌어주었다,
"별명이 어째서 사마귀인가요?"
내 말에 선배가 미소 하나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그녀가 사마귀를 닮았기 떄문이지."
이 선배는 내가 아까 전에 들은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귀족이 늘 그래왔듯 열살차이가 나는 신랑에게 시집왔고, 재능이 출중했던 남편을 보좌해 남편이 예술가로 대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남편은 자신의 예술이 빛나는 만큼 야위어갔다. 곧 죽은 남편은 모든 이들의 기억속에 각인되어 그녀를 남편을 잡아먹은, 사마귀 부인이라부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불쌍한 여자잖아요."
내 말에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이 세계는 본래 그런 곳이야. 다른 곳들은 벌써 비행기다, 배다 하고 있는데, 이 세계는 과거에 붙박혀 있어. 그러니까 미망인을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냥 통용되는 사회지."
그는 외부세계를 잘 알았다. 아마 귀족들만큼이나 더 잘 알 것이다.
"어쩄거나 저 부인은 자네가 맘에 든 모양이군."
"하하, 재능때문에 맘에 드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쨌든 눈에 띄는 것도 재능이라네. 엔디미온군."
사마귀는 어떨까. 남편을 잡아먹는 사마귀는 생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후 살롱이 없는 날, 사마귀 부인이 날 저택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사마귀 부인은 나타나지 않고 하인이 날 그녀의 침실로 안내했다.
침실에 인도된 나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가득한 하쉬쉬 향기가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엔디미온, 좋은 이름이에요."
그녀가 후욱하고 담뱃대를 내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과거 다른 사회가 그랬듯 호화로운 보랏빛 기모노를 어깨에서 살짝 내려뜨려 입고 있었다.
"잠시 이리로 오겠어요?"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살롱에서 만났던 그녀의 옷차림을 생각했다. 검은 옷에 흑진주 장식이 된 브롯치를 단 그녀는 얼마나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배가 사고를 당한 것도 그 옷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후...
하는 소리와 함께 독한 하시시 냄새가 풍겼다.
"엔디미온씨?"
사마귀 부인이 내 이름을 불렀다.
"네?"
"내가 내 별명이 뭐라고 그랬지요?"
아까 전과는 다르게 평소의 뮤즈다운 질문이 돌아왔다.
"사마귀라고..."
"잘 아는 군요. 그럼 과학자는 아니겠지만 한번 물어보죠? 사마귀는 왜 잡아먹힐 까요?"
암사마귀에 잡혀 죽는다...는 답을 말할 생각은 없었다,
"절 협박하시는군요. 하지만 전 살롱엔 이제 처음 들어왔..."
"내 눈물점은."
그녀가 생긋 웃었다. 살짝이지만 그녀의 가슴골이 잠시 보였다.
"불운의 점이에요. 좋은 기운도 가지고 있지만."
그녀가 다시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침실에서 잠깐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저 몸에 두른 것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기모노는 치렁하게 무릎에서 발끝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까 전에 협박이라고 했는데."
그녀가 빙긋 웃었다.
"난 본론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엔디미온씨."
그렇게 본론없이 며칠동안이나 그녀는 나를 불렀다. 유혹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그녀의 태도가 그저 날 상대로 갖고 노는 것 같았다.
하여간 그러는 동안에 그녀에게서 내게 의뢰가 하나 들어왔고, 나는 애초에 살롱에 들어갈때 밝혔듯이 시와 조각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잔혹함을 노래한 시와 그녀의 안면상을 조각했다. 이게 잘 풀리면 어쩌면 다른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적어도 난 그녀의 살롱에는 있고 싶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가 다시 날 집으로 초대했다. 이때만큼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격식있는 초대였기에 나는 마침 완성된 안면상과 시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여주인님은?"
내 질문에 하인은 전에 날 데리고 간 적이 있는 그녀의 침실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침실에서는 한 남자가 막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그리스풍의 잘 생긴 미남이었다.
옷에서 진한 하시시 냄새가 났다.
"어서오세요. 엔디미온씨."
침실의 침대에서 베일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애초에 알고 있었던 사실이 아닌가. 그녀는 남편을 잃었기에 대신할 남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안면상과 시를 가지고 왔습니다."
"시는 됐고, 안면상을 보여주세요."
그녀는 그 시의 내용을 미처 아는 것 같이 말했다.
곧 안면상이 하인의 손으로부터 침대로 전달되었다. 먼 발치로나마 그녀의 손끝이 자신의 청동상 얼굴에 향하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아름답군요..."
그녀가 탄식하듯 말했다.
"내 나이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이건 당신이 날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죠."
글쎄. 내가 그녀를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르게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몇번 불려다니면서 얻었던 그 황당한 느낌.
유혹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몇번 얼굴을 봤을 뿐인데 그 감정이 안면상에 스며들었던 것일까...
"당신은 정말 특별한 남자에요."
그녀가 침대에서 걸어나왔다. 약간 흐트러진 매무새긴 했지만 살짝 복숭아빛이 도는 가운을 입은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당신은 재능이 있어요."
그녀가 내 어깨를 감쌌다.
"이 사마귀가 잠시 정신을 잃을 만큼 재능이 있어요...나와 함께 일하지 않겠어요?"
그녀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나는 얼마 전에 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마귀라고 했지만 결국은 여자다.
그녀의 나쁜 버릇을 고쳐줘야 하리라고.
나는 살짝 그녀의 허리를 당기며 속삭였다.
"얼마든지요...하지만 약속 한가지는 해주셔야 겠습니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난 그녀에게 내가 없는 동안 다른 남자들을 침실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명령했고, 그녀는 뮤즈가 아니라 내 애인인것처럼 그 명령을 받들었다.
그녀의 침실에서는 이제 하시시 향기가 풍기지 않았고, 그 침실에는 나와 그녀만이 머물렀다,
낮에는 그녀의 공방에서 조각을 하고 밤에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드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그 사건이 터졌다.
"엔디미온. 당신의 조각이 한 몇도 정도 삐뚤어진 것 같군요."
그녀가 조각상 하나를 가리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습작중이기에 그 조각은 큰 영향력은 없을 터였다. 시청에 내놓을 달의 연인의 상은 정말 큰 조각이라서 이렇게 시험작을 해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진짜가 들어갈 땐 좀 다를테니까."
나는 사마귀 부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향긋한 냄새가 더 이상 하시시의 잔향을 품지 않고 전달되어 왔다.
"엔디미온. 얼굴 내려놔요. 무거우니까."
"....."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얼마 뒤 그녀의 침실에서 쫓겨났고, 달의 연인상이 시청에 들어가는 동안 사마귀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여전히 여러개의 조각상을 만들었고, 사마귀 부인의 얼굴 안면상도 다시 보냈지만 난 더 이상 살롱회원이 아니라는 차가운 대답만 들었다.
난 화가 났다. 어째서 난 이 여자에게 이렇게 농락당한단 말인가. 그녀의 애초의 약속대로 모든 살롱에서 작업의뢰가 들어오고 있었고, 수많은 사교모임의 초대가 잇달았다.
하지만 그녀의 살롱에서는 더 이상 내게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마귀 부인을 만나게 해주오."
나는 그녀의 자택에서 그런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속으로는 안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다른 사회에 이런 말이 있었다. 도깨비를 잡으러 가다가 도깨비가 되어버린다는...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1달을 그렇게 했을까. 1달하고 2일이 지났을때 자택에 수위가 없었다. 집 구조가 좀 복잡하긴 했지만, 그래도 몇달을 같이 살았으므로 난 그녀의 침실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하시시 향기는 풍기지 않았다.
"어서오세요.엔디미온."
그녀는 눈처럼 흰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그녀를 꽉 껴안았다.
"왜 그렇게 변덕이..."
그 말을 하고 나는 잠깐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럴 일이 아닌데...싶은 순간 그녀가 속삭였다.
"하시시는 뿌리지 않았지만 조금 독한 약을 썼어요. 당신은 좀 특별하니까..."
"어...째...서..."
"당신의 완벽한 조각을 봤을 때 난 정말 눈물이 났어요, 말했죠? 내 눈물점은... 당신이 너무 특별해서 살려주려고 일부러 만나지 않았는데...당신은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온 나머지 이꼴을 당하는거에요. 물론 괴롭힐 생각은 없지만..."
"날 어떻게...하려고..."
"엔디미온, 당신이 조각한 그 달의 연인처럼 당신도 그렇게 만들어줄게요...물론 그 전에 당신의 내장, 뇌, 지방까지 다 긁어서 내가 먹고 당신의 남은 껍데기는 영원히 보존할 거에요..."
"자...잠깐만...그...런...."
말이 토막토막 끊겼다. 내 말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난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엔디미온. 당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정신이 흐릿해졌다.
"당신은 죽어줘야겠어요. 걱정 말아요. 시신에는 손상이 가지 않게 할게요. 당신은 정말 멋진 예술가였어요. 마지막에 실수 하지 않았다면 더욱 완벽했을텐데..."
그것이 내가 들은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