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률은 느긋한 표정으로 와인 한 병을 땄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와는 달리, 양심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나니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총으로 비서를 죽일 때와, 그 이전에 아내 이상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죽이던 그때와는 달랐다. 물론 그녀의 유령이 그를 괴롭히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 유령조차도 그의 사랑에 보답해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보이나?”

 

그는 유령을 상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네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무릎을 꿇은 채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잘 보이지? 날 잡겠다고, 날 죽이겠다고 길길이 뛰던 놈이 복수한다고 제 정체마저 감춘채로 뛰어다니다가 결국 내 덫에 걸렸지...하하, 이젠 죽고 나면 내 머리에 유령이 두 개겠군.”

 

“.....”

 

그는 비싸다고 소문난 와인을 물 들이키듯 들이켰다. 병째로.

만약 섬세한 소믈리에라도 한 명 있었다면 아까운 짓 한다면서 병을 빼앗을 정도의 난폭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화면이 꺼져버렸다.

 

“총?”

 

그럴 리가. 싶었다.

민간인에게 총소지 허가가 내려진다고는 해도...

아니,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복수에 눈이 멀었다면 총기소지도 가능하지...젠장.”

 

방심했다.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총은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치이이익.

소리와 동시에 화면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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