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지윤은 쓰러지듯이 거실의 소파에 주저 앉았다. 길준은 재미있다는 듯이 힐긋 보더니 자신도 이내 옆에 있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왜 날 그 교회로 데려간 겁니까.”
지윤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길준을 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저 남자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았다. 아버지의 정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저 남자는 과연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신부님, 아니 지윤씨가 스스로 복수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갔지요.”
“형이 자주 가는 곳인지는 몰랐잖습니까. 어떻게 우연히...”
"우연히...는 아니죠.”
그는 말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말꼬리를 돌렸다.
“그럼 신부님은 그 총을 받을 때 누가 받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시면서 기다리신겁니까? 그걸 누가 받으러 올지도 모르고, 그 총으로 누군가를 살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약속시간을 잡아놓았었습니다.”
길준은 다리를 풀고 사지를 쭉쭉 뻗었다. 도피생활에 가깝다시피한 이 생활에서 길준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길어졌다.
그림자의 깊이가 더 해지고 광대뼈가 두드러졌다. 초기, 행복했던 작가의 도도록한 얼굴과는 차이가 너무 나서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지정이었다.
“형을...부른 게 당신이었...”
“음, 나는 성격이 급해서요.”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내의 그림자. 그는 그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지윤에게 설명했다.
“그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난 내 아내를 죽인 놈을 찾았어요. 합리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놈이 분명해요. 지금 와서는 아내의 유령을 걷어치우고 재산으로 놀고 먹고 싶지만 그럴 순 없죠. 그 놈이 만약 어쩔 수 없는 사랑에 이끌려서 했다 해도 위험한 일일텐데.
사랑도 뭣도 아니었어요. 그저 노리개로 갖고 논 거죠.“
“도대체 그 말은 누가 했다는 겁니까.”
지윤이 반발했다.
"누가가 아닙니다.”
“......”
“나는 법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저 놈을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증거도 갖고 싶었죠.”
“......”
“그래서 테스트를 좀 했죠.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밀회장소에서 그녀의 편지를 전달하기로. 그게 교회 특정 의자에 놓아두었어요....”
“형이 그 여자를 사랑했었다는게 당신 분노의 원인이군요. 그리고 당신 아내도 그 남자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거?”
지윤이 얼음을 씹어뱉듯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적어도 당신한테는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길준씨! 아니 복수를 꿈꾼다고 하니 복수씨라고 불러드릴까요? 당신은 우리 아버지를 잘 몰라요! 단순히 재산만 넘겨주고 넘어갈 영감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길준이 유한 표정으로 맞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난 지금 서서히 복수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는 모릅니다. 잘 몰라요. 하지만 한가지 고마운건 거기 썩어갈수도 있었을 내 인생을 구해주셨다는 거죠.”
“......”
길준은 한숨에 가까운 웃음을 짓더니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신부님은 백번 이야기해도 모르겠죠. 자기를 총으로 쏜 형마저 감싸안는게 신부겠죠,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한 대상은 신부가 아니라 지윤이라는 사람이니까...진상을 안다면 복수를 말리기 이전에 날 도와줄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살을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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