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원동의 교회는 비어 있을 시간이었다. 병률은 향원동 교회에 한동안 다닌 적이 있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은 모두 종교가 하나쯤은 있었다. 어떻게든 표심을 붙잡아야 하니 한가지 정도는 있는 게 유리했다. 그래서 그가 모신 상관들은 교회에 자주 나갔다.
그래서 병률도 교회의 분위기에는 익숙했다. 특히 아무도 없는 그곳의 분위기가.
그는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도 없는 것을 우선 확인했다. 그건 오랫동안의 습관이었다.
병률은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뭔가 기도같은 걸 해야할 것 같은데...그는 어색하게 손을 마주 모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양손이 마치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것처럼 합쳐졌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손만 모았을 뿐이지. 어느 기도에 가까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간절한 아픔도 간절한 두려움도 간절한 소망도...그 어느 것도 단어로 발하여지지 못했다.
사실 이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는 이때까지 거의 모든 종교 사찰에 갈때마다 이것을 시도해보았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말이 마음의 표현이라면, 그의 죄책감은 한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의 마음을 무능하기 그지 없는 양심의 칼로 찌르고 있는 동안 하얀 빛이 교회의 벽을 환히 비췄다. 하얀 빛...
병률은 그 빛에 휩싸여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에 한번쯤은 나가보는 것도 괜찮지요.”
이걸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길준은 요한 신부, 아니 지윤을 이끌고 향원동의 교회로 향했다.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떨어져나간 기형 종교일 뿐입니다. 제게 일부러 교회를 보여주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온화한 신부님 치고는 독설이 세시군요.”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 아닙니까. 당신은 종교를 무슨 세일 품목처럼 생각하는 것 같군요,”
“제가 당신의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고 있다는 건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더더군다나 당신은 당신의 형님에게 목숨을 뺏길 뻔 했습니다. 당신의 원망은 그 형에게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
“......”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은 이제는 기세가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을 여전히 가지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의혹과 불신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건 조개가 입을 꼭 다문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양쪽 다 강하게 다물리긴 하지만 억지로 벌리면 벌어지는 그런 틈. 그 틈이 그들에게 있었다.,.
“당신을 죽이려고 한 건 당신 형입니다.”
한글자 한글자 독을 심는 것처럼 길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를 정신병원에 처 넣었지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그건 당신의 추측일뿐이고, 주장일 뿐입니다. 전 총을 당신에게 건네긴 했지만 그 총을 드릴때는 쏘라고 드린 건 아닙니다.”
“...쏘지 않습니다.”
길준이 날선 어투로 대답했다. 그 대답은 얼얼할 정도로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윤은 그에게 그 정도의 복수심이 있다는 사실에 조용히 몸을 떨었다.
“내가 하는 일은.”
길준이 천천히 대꾸했다,
“그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향하도록 조종하는 일이죠.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보니 그렇게 될 일은 조금 힘들 것 같군요.”
“됐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절 더 이상 묶어놓지 말길 바랍니다. 피정도 이 정도면 지겨...”
순간적으로 지윤은 입을 다물었다. 향원동, 그 교회에서 형이 막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형은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겉모습만 보면 꼭 미친 것 같았다.
“날 더 이상 괴롭히지마.”
약간 마비증상 같은 것이 왔는지 그가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도와줘. 살려줘. 미안해...”
그때 지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한번도 자신의 발로 서 있는 것에 회의를 느껴본 적 없던 사람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양말도 벗은 채 병률이 양손을 모아쥐었다.
“기도라니...젠장.”
씹어뱉듯이 말하면서 길준은 입을 꽉 깨물었다.
“못 봐주겠군. 갑시다. 신부님. 저런 놈을 이 자리에서 죽여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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