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률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일어나는 날이 많아졌다. 그 여자의 환영을 본 이후로는 입맛조차 잃었다. 모든 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의 망령은 자기가 가장 원하는 지점 가까이에 있는 곳에서 괴롭히고 있었다. 누군가의 복수인걸까. 하는 일마다 망가뜨리던 아버지가 알면 좋아할 일이었다.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이 미치자 병률은 그제서야 깨닫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길준.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뛰쳐나온 그 놈.

아버지가 그 재산을 몽땅 그 놈에게 맡겼다면?

아버지의 등기부등본에는 이름모를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져 있었지만, 최근 하나가 맘에 묘하게 걸렸다. 가장 큰 덩어리. 유증으로 복지재단을 설립한다는 유언장대로 되어 있었지만 그 바뀌기 전의 명의는 한 사람이었다. ‘이준구.’

 

사모님과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이준구를 만난 적은 있지만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알려지면 차를 빼앗길까봐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어차피 선거철이 되면 까발려지고 포기해야 할 그 차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모님 그 차는 어차피...”

 

숨길 때 숨길 값이라도 난 말 못 해요. 내가 무슨 죄인인가요?”

 

죄인 맞습니다.”

 

병률은 짜증이 나서 냉정하게 대꾸해버렸다.

 

지역의원은 세금의 일부를 받습니다. 공무원이죠. 공무원은 사사로이 선물을 받으면 처벌받습니다. 근데 의장님 사모님도 공무원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치가 섞여들어가기에는 선물바치는 게 일등공신이라더군요.”

 

그래서 지금 날...”

 

협박하는 거 아닙니다. 사실을 알려드릴 뿐이죠.”

 

“...알았어요. 돌려주겠어요.”

 

부루퉁한 표정이 영 못마땅한 듯 했지만 병률은 다음 계책을 쓰기로 했다.

 

사모님.”

 

왜요.”

 

의장은 차에 정신 팔렸던 마누라가 자기 정신 챙긴다고 좋아했지만 병률의 말을 들을수록 사모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차를 전달할 때 제 밑의 직원 하나 보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사모님 얼굴 상하지 않게 제가 이준구에게 빚을 좀 지워놓죠. 다음에 억대의 차가 아니라 좀 더 좋은 걸 돈하고 상관없이 받을 수 있게.”

 

그래요. , 마음대로 해요. 내가 뭔 힘이 있다고.”

 

눈에 보이지 않게 무언가가 눈을 찌르는 느낌이 들어 병률은 잠시 눈을 찌푸렸다. 강한 햇살탓인지 아니면 양심의 어딘가가 찔려서 낫고 있지 않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 내일 여직원을 보내겠습니다. 사모님이 추천해주시는 여직원이라고 하지요.”

 

어머, 내 이름으로?”

 

분명히 좋아할 겁니다. 그녀도 이쪽 동네 사람이거든요.”

 

병률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을 향해 계속 손가락을 겨누고 있는 여인을 향해서 살짝 비켜섰다. 네가 아무리 죽어서도 날 비난해도 난 꼼짝하지 않을 거야. 네가 죽는 시점에서 내 심장은 돌멩이나 다를 바 없어졌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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