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는 그러니까, 진짜 이준구가 아니라 가짜 이준구는(이제부터는 이준구라 칭한다.)그 동네에서 엄청난 재산가의 아들로 행동하면서 여러 모임에 다니기 시작했다.

죽일엽이라는 찻집도 알아두었고, 웬만한 토호들의 아내들의 얼굴도 잘 익혀 놓았다.

그중 절정이라면, 국회의장급이 되는 연줄을 만난 것이리라.

시골에도 정치적인 끈은 무서운 데가 있었다.

 

내가 모는 차는 그저 그런 쿠페나 폭스바겐같은 질 낮은 중고가 아니랍니다.”

 

전직 골프 선수였다는 그녀의 말에 주변 시골 부인들은 좀 아니꼽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시대가 변한 만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을리 만무했다.

 

폭스바겐도, 쿠페도 문제라면...”

 

이준구에게는 처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모임에서는 여자들의 중심에 파고들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그들 중에는 이준구나 지윤을 기독교에 끌어들이려는 출중한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윤이 카톨릭 신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임을 만들어 지윤을 나오게 했다.

 

여자들의 종교열정에는 가끔 그 불행한 결혼생활을 종교로 메꾸려는 부족함이 있었다.

 

엠브로시옹사의 블러디 메리가 내 품격을 살려주죠. 블러디 메리...아쉬운게 있다면 블러디 메리보다 일찍 단종된 블러디 나잇이라는 차가 있다는 거에요. 이렇게 영어로 말하면 감이 안 잡히는데 원어로 읽으면 그 발음이...정말 훌륭해요.”

 

발음 자랑인것인지, 차 자랑인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이준구가 한발 나섰다.

 

엥브로시옹사의 차라면 저도 한 대 갖고 있지요.”

 

“......”

 

그의 말에 흥미진진한 시선들이 그에게 향했다.

 

설마 그 말은...”

 

에이. 설마. 블러디 나잇이겠어요?”

 

그럼. 폭스바겐이나 쿠페쯤이야라고 말한 사모님도 보통은 아닌데, 그 이상 나오기 힘들지 않겠어요. 아마 블러디 메리쯤...”

 

잠깐 바깥을 보실까요?”

 

그는 창을 가린 커튼을 한 손으로 걷었다. 촤악. 하고 펼쳐진 창문 밑에는 1층 저 밑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운전사와 엥브로시옹사의 최고작 블러디 데이가 서 있었다. 물론 이 정도로만 해서야 상대에게 큰 한방을 먹일 수야 없었다.

그래서 이준구는 탈레랑의 방법을 썼다.

 

...저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실례. 태워드리고 싶지만...”

 

사장님!”

 

?”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사모가 이준구의 고급 양복자락을 부여잡았다.

 

엥브로시엥사에서 절대로 다시 내놓지 않는다던 저 블러디데이...아무리 봐도 저건 중고가 아니에요. 도대체 어떻게...”

 

...”

 

이준구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제게는 쉽게 내주더군요. 아마도 각 국내외 인사들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사모님께서는 더 이상 죽일엽 문제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니 이만 모임을 파해도 괜찮겠죠? 사모님은 저기 육동리에 사신다고 하셨으니...좀 있다가 제 차를 구경한 후에 천천히 가시죠. 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까.마침 블러디 나잇이 아래에 있으니까요.”

 

전 괜찮아요. 그걸 한번만 잠시 착석만 해봐도...”

 

아니, 기왕 이렇게 된김에...”

 

이준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기사를 불렀다.

 

불렀으니 곧 타실 수 있을 겝니다.”

 

그렇게 죽일엽, 크리스천 개종 운동 모임이 끝났을 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 차가 그렇게 됐다고? 정비를 잘못한 자네 잘못 아닌가. 상관없어. 블러디 데이로 태워드리면 되니까.”

 

그때 그리고 비친 창문으로 블러디 데이가 한 대 더 들어왔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한 빛을 발하는 블러디 데이는 몸체도 우아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아함속에는 사고난 차량을 예리하게 뚫고 지나갈 정도의 강함도 숨겨져 잇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이준구가 말했다.

 

아까전에 제 기사가 들어오다가 잠깐 실수했다고 하더군요. 사모님의 차량이 전조등이 좀 깨진 것 같습니다.”

 

...”

 

눈앞에 있는 블러디 데이에 눈이 나가버린 사모는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저런 차를 운전하는 기사가 실수할 리가...”

사모는 자신의 기사를 생각했다. 그다지 신통치 않다고 생각해왔기에 이번 기회에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래서.”

 

네에?”

 

블러디 데이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아주 잘 어울리는 리본도 매어다가요. 하하하하.”

 

, 정말요...”

 

농담은 농담이었지만, 얼마 뒤 그 사모는 자신의 앞으로 그 차를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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