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당신에게 천천히 들려드리죠.
그 남자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나는 질문한 것이 머쓱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마치 심사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 그인 듯 한 말투였다.
“마르치노.”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진짜 당신의 심사관이긴 한 건가요? 당신은 매우 당당해보이는군요.”
나는 그에게 은근슬쩍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오늘 새벽까지 술을 퍼마셨다는 이 남자는 술기운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은 것처럼 냉정하고 침착한 얼굴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살리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심사관들 앞에서 했던 말을 그는 반복했다.
“오래된 일도 아니라면서 당신은 기존 사실에 대해서 계속 틀리게 말하는군요. 이건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이 가야 할 파이 행성에서는 친부살해는 죄가 아니니까요.”
“......”
“마르치노. 오히려 이건 당신에게 좋은 일일수 있습니다. 황제폐하는 당신을 죽이는 것보다는 재산을 압류하고 당신을 그곳의 영웅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건가요? 솔직히 인정만 하면 당신은 영원히 잘 살 수 있을 겁니다.”
“내게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는 간단명료했다.
“그녀가 없이는 어디로든 가지 않겠다고 그녀와 약속했습니다. 먼 항성계의 외계인들에게 영웅이 되건 어쩌건 간에요.”
“오, 마르치노.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자는 거기에서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천천히 들려드리죠. 그 날의 사건을.”
마르치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마르치노는 파이 행성계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아버지 레오와는 항상 그렇듯이 사무적인 인사를 나누었고, 사랑하는 약혼녀에게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열정적인 프로포즈를 했다. 아버지 레오가 그녀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이 연애감정이었다고 주장한 그의 막내동생의 말은 대부분의 심사관이 증명을 한 문제였다. 그와 그의 아버지가 죽일 듯이 서로를 증오한다는 말도 틀렸다고 그는 대답했다.
군인이기에 그는 우리가 지도하는 곳으로 가야했지만, 그는 곧 제대를 할 예정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는 파이 행성에서 1년만 있을 예정이었다.
파이행성은 다른 지역보다 더 냉혹하고 까다로운 곳이었다,
옛 지역의 러시아가 생각난다고나 할까.
지금 러시아는 눈으로 완전히 덮혀있지만 말이다.,
싸움과 술과 여자가 얽혀 있는 땅.
그곳이 파이 행성이었다.
그래서 황제폐하께서도 거기만은 쉽게 다루실 수도 없었다.
그곳에는 노인이 없었다. 파이 행성은 강자만을 인정했다. 그랬기에 상속권을 지닌 아들들은 친부를 살해해야만 그의 모든 것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해당한 아버지들만이 그들의 존귀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부디 무사히 다녀오거라.”
마르치노의 아버지 레오의 말에 마르치노는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대신했다.
“이런 날에도 침묵하는구나. 그 침묵이 아비를 슬프게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버지. 수행의 일부니 참으세요.”
동생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재산을 나누지 않은 걸로 내게 섭섭한 마음이 있구나. 마르치노. 이 아비는...”
블랙박스에는 여기까지 담겨 있었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마르치노에게 들어야했는데 12명의 심사관이 이 단계에서 모두 실패했다.
“나의 아버지 레오는...”
마르치노가 내 눈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말을 했다.
“소설가였습니다. 그것도 잘 나가는 소설가였죠. 친부살해를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면서 당신들은 아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약혼녀와 아버지와의 사이가 돈독했으므로 아마 그 질투로 아들이 아비를 죽였을 것이다! 이것이 극적이고, 플레이보이였던 내 아버지를 훌륭하게 매장하는 방법이었겠죠.”
“...난 그런 이야기는...”
“살리오. 당신은 13명의 심사관이 최고로 뽑은 내 아버지 다음의 예술가입니다...적어도 당신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나 마저 듣지요.”
마르치노는 말을 이었다.
그날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이별을 했다.
기존에 돌던 말처럼 재산으로 인한 말다툼은 전혀 없었고, 마르치노는 그 이후 약혼녀를 만났다.
그의 약혼녀는 사치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검소한 여자였고, 가난한 마르치노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부자였다.
사실 재산으로 인한 다툼은 거기에서 일어났다.
“마르치노.”
“젠.”
그녀는 그날 자신에게 온 편지를 그에게 읽히지 않았다. 그가 몰래 열어본 것이었다.
“옛 연인이 당신에게 결혼을 요청한다고 하는 편지를 읽었어.”
“...당신, 나 몰래 메일을 열어본 거야?”
연인들 사이에 흔히 있는 다툼이었다. 젠은 마르치노 이전에 수많은 연인이 있었고, 마르치노는 그녀의 명성과 과거의 연인들에게 질투심을 안고 있었다. 특히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이 연인은 돈이 궁한게 분명했다. 그 돈을 메꾸기 위해서 그녀에게 다시 결혼을 신청한 것이었고, 그녀는 아직도 옛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다.
말다툼이 있었고, 마르치노는 젠을 떠밀어버렸고, 젠은 약혼자의 거친 행동에 바닥에 미끄러져버렸다. 다행히 상처는 없었고, 마르치노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놀라 그녀에게 사과했다.
젠은 일어나서 마르치노의 뺨을 때렸고, 그를 밀어버린 후 거칠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사랑으로 뭉친 연인의 질투의 결과였다.
“나는 젠과 그렇게 싸운 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마르치노가 말을 이었다.
“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열어주지 않았죠.”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젠과 젠지르노는 우연히 성명의 앞글자가 같아서...두 사람이 비밀번호를 쓰는 법도 같았던 것이다.
두 사람 다 문의 비밀번호를 성명의 앞글자를 썼기에, 그는 젠이 나가는 것을 보고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아버지 레오가 앉아 있었다.(마르치노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자리에 앉아있던 레오가 옛 구애자였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많이 놀라셨겠군요.”
내 말에 마르치노가 대꾸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아니오. 난 놀라지 않았습니다.레오는...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사실 젠을 무척 질투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연인이 아닌 다음에는 어떻게 그 비밀 번호를...”
“난 질투심에 그녀를 때리긴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타락하지 않았다는 걸 압니다.”
마르치노가 대답했다.
레오는 그가 들어온 것을 알자 신음소리를 냈고, 순간적으로 무척 놀란 마르치노는 레오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기절한 노인을 등에 업고 레오의 집에 내려다놓았다.
“보세요. 결국 당신이 머리에 병을 쳐서 죽은 것 아닙니까.”
“...의사들의 진단 결과도 안 보신 겁니까?”
나는 그에게 진단결과를 알려준 의사를 증오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 마르치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레오의 눈에 띄어버린 탓에, 메일을 훔쳐 본 것도 모자라, 연인의 집에 침입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행동이었다고 마르치노는 증언했다.
그리고 뒤 이어 레오를 집에 데려다놓고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온 젠지르노와 마주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젠지르노가 했다고 생각하는군요,”
“엉겁결에 공격했던걸 알고 있던 사람은 그 애밖에 없으니까요.”
젠지르노는 매우 친절하게 마르치노에게 비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젠과 달리 젠지르노의 증언은 없었다.
“그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이 곧 행동이죠.”
군대 강령을 외우듯이 그가 대꾸했다.
“옛 애인이 젠지르노였던 겁니다.”
“그건 비약이 심한데요.”
내 말에 마르치노가 비꼬듯이 말했다.
“당신은 내 사형선고를 언도하기라도 할 것 같군요. 이렇게 공정하지 않은...”
“.....”
“그 놈은 내 약혼녀에게 내가 떠나는 날을 골라서...”
젠지르노는 그가 그녀와 사귀기 전, 약 1년간의 연애기간을 가졌다고 했다. 그때는 그녀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고.
젠지르노는 사업상의 이유로 그녀와 좀 떨어져 있었다.
“시기상으로 보면 그가 당신보다 앞이었죠,”
“...내게 누명을...”
그의 말에 따르면 젠지르노는 그녀와 그를 합쳐서 대항한다 해도 이길 수 없을만큼의 거부였다. 그러므로 그가 그의 아버지의 재산에 탐을 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또 레오를 죽여야 할 이유는 뭡니까.”
“날, 파이 행성으로 아예 보내버릴 작정이었던 거죠. 그리고 젠과 새로 시작할 목적으로...”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중단했다. 밖에 있는 젠지르노가 손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울방에서 나와 젠지르노를 마주했다.
“형님이 뭐라던가요.”
“당신의 혐의를 주장했지요.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심사관법은 새로운 범인을 지목하진 않습니다.”
“......”
젠지르노의 침묵에 난 힘이 빠졌다. 이렇게 본인을 도와주고 있는데도 맥없이 있다니. 그가 몇마디만 추가를 한다면 그의 눈엣가시인 형을 제거할 수 있는데도.
마지막 양심이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리라.
“젠. 몇마디만 더 하면 됩니다. 당신이 꿈꾸던 삶과 우리가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거죠. 파이행성을 올바로 바로잡을 사람은 당신 형밖에는 없으니까요. 컴퓨터가 그렇게 정한 겁니다. 이 시련을 이겨내고 그 땅을 정화시킬 영웅으로 말입니다. 당신은 사랑 때문에 형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못하겠습니다.”
젠지르노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이건 아니에요. 형!”
그는 거울방을 손으로 두들겼다. 하지만 마르치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있는 마르치노를 보던 젠지르노가 나직히 말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죽인 건...”
“...부디 용서하십시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우린 그가 무척 필요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방법을 써야 할 정도로요. 그는 영웅입니다. 우리에겐 그와 같은 사람이 제대를 해서는...”
“......”
젠지르노는 어깨를 내려뜨린 후 자리를 떠났다,
그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면 마르치노도 파이행성에서 자리를 잡으리라. 친부살해의 죄를 쓴 채로, 파이행성인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단지 새로운 지구에서 추방되었을 뿐, 더 풍요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 사실은 이렇다.
레오는 타격을 입었지만 치명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젠지르노의 동생, 즉 막내는 우리의 명령을 받고 레오에게 주사자국도 남지 않을뿐더러 부검에도 나오지 않는 신약을 주사했다. 2초만에 레오는 숨을 거뒀고, 방정맞은 의사가 떠들지만 않았더라면 심사관들은 단 한번에 그를 파이행성으로 추방할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