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준구라는 남자는 며칠동안 그를 추궁했지만 그가 바라는 답은 얻지 못했다. 요한 신부, 이지윤, 이지윤, 요한 신부. 이지윤, 요한신부, 요한신부,이지윤.

과연 그것들 중에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아버지는 죽었다. 그리고 형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고해성사실로 들어왔다. 형을 보는 순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은 그대로 총에 맞았다. 죽음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형제들에게는 자신이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문이 열렸다. 병실처럼 꾸민 방에는 인공적인 조명 하나 없었다. 가끔 약을 갖다주는 간호사와 의사가 있긴 했지만 그들이 진짜 의사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신지요?”

 

이준구가 방에 들어왔다. 이지윤은 얼른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왜 살린 것일까. 이 남자는.

이미 답을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더할 것이 있을까? 무엇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복수의 첫걸음을 맡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이준구씨.”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이준구가 살짝 몸을 숙여보였다.

 

요한 신부님께 친한 친구분을 소개시켜드리죠. 아마 서로 낯이 익으실 겁니다. 그리고 이분이야 말로...”

 

이준구라고 합니다. 요한 신부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지윤은 눈을 크게 떴다. 길함동까지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서 왔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지윤의 손가락 끝에 아름다운 여인이 하나 서 있었다. 지윤은 그녀의 슬픈 미소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명의 도용을 한 겁니까?”

 

여인의 손가락을 억지로 피하면서 이지윤은 길준에게 물어보았다.

 

당신의 진짜 이름은?”

 

아직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복수라고 부르시죠.”

 

이준구, 아니 복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지윤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름외에 모든 것은 다 밝히겠습니다. 복수의 이유, 그리고 제 눈에 보이는 아내의 환영. 아마 다 들으시면 황당한 이야기라고 거절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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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률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m모 국회의원이 좋아할 법한 사진과 동영상들. 그걸 위해서 그 여자가 희생당했다. 아마 그 여자가 살아있었다면 그녀 역시 동영상에 나오니까 자신에게 끝까지 붙잡혀 있었으리라.

그는 동영상안에서 그녀를 때리고, 끝까지 가졌다. 하지만 병률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 정상적인 관계에서라면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m모 국회의원은 진상을 알자마자 그에게 말했다.

 

그 여자를 죽여.”

 

그 여자를 왜 죽여야 하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붙잡히긴 했어도 강하고 튼튼한 여자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죽여야 하는 때에도 그녀에게 달콤하게 말했다.

 

이제 당신을 놓아줄게.”

 

그러자 언제 그에게 잡혀 있었을까 싶은 그녀는 도도하게 그를 떠났다. 그리고 떠나는 그녀의 등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쫓아가면서 총을 쏘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아이. 그녀의 아이를 쏘아버린 것이다. 죽어버렸다. 둘 다.

 

자네 뭐하나.”

 

다른 비서 하나가 그의 생각을 훼방놓았다. 그는 굳어진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마치 눈앞에 갑자기 쥐가 나타난 것처럼.

 

의원님이 찾으시네.”

 

....”

 

근데 자네 인맥이 좀 있나봐?”

 

그 말에 병률은 쓰게 웃었다.

 

그렇게 보이십니까?”

 

자넨 낙하산 중의 낙하산이야.”

 

“......”

 

얼핏 듣자하니 m모 국회의원하고도 잘 아는 사이라던데. 더더군다나 경찰이었다면서?”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어디서 듣긴. 이 동네는 본래 그런 정보 하나는 빠삭한 곳이야. 자네도 생각보다 디딜 구석이 많았었군.”

 

병률은 다 쓸데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그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정의원은 모든 것을 알고 그를 자신의 밑으로 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부럽군.”

 

그 비서는 비꼬았다.

 

나도 m모 국회의원 빽이 있었으면 그렇게 쉽게 자리를 얻었을텐데 말이야. 애초에 선거업무도 해보지 못한 놈이 비서라니...”

 

“...의원님이 부르신다니 가보겠습니다.”

 

, 정의원님이 찾으시는 거 아냐. m의장님이 부르셔.”

 

“.....”

 

m과 정의원은 견원지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제 m은 의장이 되었고, 정의원이 말한대로 자신의 개가 되라는 것은 반대파에서 손을 떼라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서로 반대파이지만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자신을 인정했다...병률은 그렇게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들고 있던 그 카메라 말인데...”

 

?”

 

순간 병률은 흠칫했다. 그 카메라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기종이 뭔가? 나도 그런 카메라 좋아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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