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진짜로 그렇게 했다. 사람들이 다 모아놓고 성서라고 불리는 철판을 밑으로 깐 후 밟으라고 했다. 예배때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은 철판을 밟고 지나갔다.

하지만 몇몇은 그렇게 하지 않다가 어깨를 붙잡혀 끌려갔다.

나는 당연히 철판을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저 한켠에서 적오가 철판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적오가 나에게 한것처럼 나도 적오에게 말을 전할 수 있을까싶어서 적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자 금방 답이 왔다.

 

왜요. 요물이 신을 믿는다고 하니까 의심스러우신가보죠?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신을 믿는 법입니다. 좀 있다가 보시면 아시게 될 거에요. 당신은 생각보다 너무 .단순해요.”

 

성주는 한동안 계속 고르고 있다가 이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나쁜 조건이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너희들의 종교를 무조건 탄압하지 않겠다. 신의 이름으로 싸울 기회를 주겠다. 예배도 마음껏 드려도 좋다. 단지 내 밑에서 일만 충실히 한다면 무조건 허용한다. 나도 개종할테니까. 그게 조건이다. 물론 방금 성서를 밟고 지나간 자는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겠지. 난 배반자는 필요하지 않다.”

 

그와 동시에 철판을 밟고 지나갔던 자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그때 철판위에 걸을 것을 강요하던 병사들 중 하나가 외쳤다.

 

성주님! 주동자가 사라졌습니다. 포교사 말입니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군. 그 자는 용감해보이지는 않았다. 자기 종교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가다니 약한 자로군.”

 

그래서 우리가 그 조건으로 무얼 하면 되는 거죠?”

 

적오가 빙긋 웃으면서 영주에게 말했다. 영주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다소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편이 되어 황궁을 타도하는 것이지. 모든 자가 평등한 사회로 만들 것이다.”

 

꽤 괜찮은 이야기긴 하군요. 물론 그 전에 자리가 잡히기 전에는 당연히 당신이 나라를 다스릴테고.”

 

별로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군. 여자. 어디서 왔나. 이곳 사람은 아닌 듯 한데.”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만해. 적오. 내가 마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전했지만 그녀는 단지 웃었을 뿐이었다.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패설사관 대리가 왔다가 죽어서 나갔죠...후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성주의 시뻘건 얼굴에 그녀가 대꾸했다.

 

이번 패설사관의 시체를 제가 발견했거든요. 뽑히긴 했지만 화살의 형태가 이쪽 지방의 것이었고, 더더군다나 군에서만 지급되는 화살이더군요. 그건 어찌 설명하실는지? 아마 전의 대리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수리가 죽었나? 내 말에 적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시체였지만 제가 살려냈죠. 신의 도우심으로. 그를 불러내면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거짓말 하지 마라. 여자!”

 

비싼 밥 먹고 거짓말은 안 한답니다.”

적오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누가 보면 어린애 이유식을 떠먹이는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고 할 것 같았다.

 

갑자기 주변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같은 것이 신자들을 감쌌다.

 

이 안개는...”

 

포교사님이 움직이셨군요. 하긴 몰래 숨어있자니 낯부끄럽기도 했을 테고...”

 

거짓말 하지 마시오. 성주여. 당신이 저지른 죄악은 신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게요. 우리를 탄압하려 하다가 오히려 숫자가 느니까 그대의 뜻대로 이용하려고...”

 

포교사도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예배때 보이던 알 수 없는 그 어두움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패설사관님, 저희에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황제의 명을.”

 

반쯤 찢어진 내 옷을 입은 수리는 조금 얼뜨기같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위엄은 좀 있어보였다. 수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때 적오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리의 말이 전해져왔다.

 

영주가 보낸 자들이 화살을 쏘았습니다. 사관님.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잘 훈련된 사수라 피할길 없이 당하고 말았는데 눈뜨고 일어나보니 어느새 이쪽으로 와 있더군요. 어떻게 할까요?”

 

성주여.”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대가 배후에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건 내 이미 짐작하고 있었소.”

 

그말에 적오가 거짓말도.” 라고 말했고 뒤이어 수리가 과연 패설사관님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으응? 그럼 이쪽이 사관이 아니었던건가?”

 

여기서 그대의 잔학상을 다 보았소. 다만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혀를 뽑고 고문당한 자들이 증언해주었지.그러면서도 앞으로는 그들의 종교를 믿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주장도 황당하지만 그 근거는 더욱 황당하군. 나는 이번 사건에 전권을 맡아 내려왔소. 수리 검을 이리 주게나.”

 

수리는 그게 얼마나 귀한 검인지 모르도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아마 내가 말하면 뒤로 넘어가겠지만 그건 내 알바가 아니다.

 

황제의 명을 내리노라. 사해평등주의를 주장하는 그 종교는 인정할 수 없으나, 다만 황제의 법전에 있는 바 아무 이유없이 교화해야 할 대상인 백성을 함부로 고문한 죄, 사형은 황제의 힘에 의한 것인데 임의대로 지방관이 사형을 행한 죄 과중하기 짝이 없다. 이에 전권을 부여받은 나 패관사관이 명한다. 성주 백환달을 포교사를 비롯하여 박해받은자 전원이 돌을 던져 죽일지어다!”

 

차라리 검을 들어 목을 치시오!”

 

성주가 외쳤다.

 

이것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순 없소.”

 

그게 그대의 한계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적오의 음성을 들었다.

 

전 떠나겠으니 마저 청소하고 가세요. 왕의 패설사관. 다만 수리의 영혼은 제가 가져가겠어요. 가지고 있으니 편리하더군요. 몸은 당신이 관리하시고요. 전 이만 가볼게요.”

 

어느샌가 적오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돌로 두들겨맞기 시작한 성주의 저 건너편에 수리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며 적오를 불렀다.

 

수리의 영혼을 돌려다오.”

 

돌려받고 싶으시면 저랑 같이 다니면 되요. 당신 덕분에 영주자리에서 쫓겨났으니 그에 합당한 댓가는 받아야겠어요.”

 

적오의 웃음소리가 전해져왔다. 하지만 처음처럼 기분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상소문에 의해서 한동안 유배를 가 있게 되었다. 도착하기 전에 해배되긴 했지만 한동안은 근신하고 있으라는 명이 떨어져 황궁의 도서관에서 기거하며 경전들을 필사했다.

 이번문건은 비밀문서처분이 떨어져 이렇게 궁정일기에 대신 기록한다. 밀봉하고 황제인을 찍어 앞으로의 선례로 만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