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그런데 애인을 사귀자마자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그리고 애인과 고양이 이후로 개도 키우기 시작했다. 애인과는 3번까지 헤어져봤으며 4번째 헤어졌다 만났을 때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3년만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큰 아이가 태어난 후 2년째 되던 해에는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쌍둥이가 태어난 뒤 고양이가 새끼를 5마리 낳았고, 늙은 개가 죽었으며, 죽은 개를 이어서 유기견 3마리가 입양되어 왔다. 새끼 고양이 2마리는 다른 집으로 입양되었고, 1마리는 죽었다.

그렇게 우리집의 생태계는 변화무쌍하게 변화했다.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 정도일까. 나는 이름이 크게 나지는 않았지만 프로 목수였기 때문에 가족이 늘어날 때마다 캣타워니, 요람이니 같은 것들을 만들어 아내를 소소하게 기쁘게 했다.

어제 오후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들이 내 다리에 매달렸다. 나는 아이가 묵직하다는 걸 알았다. 몇 개월 되지 않은 생명체인데도 이렇게 무게가 많이 나가다니...

그제서야 진짜 생명체라는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내가 목공품을 만드는 진짜 이유도.

나는 나무를 사랑하듯,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입양견들과 고양이를 사랑했던 것이다.

나무가 묵직한 따뜻함을 지녔듯이 생명체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나는 아들의 묵직함을 느낌과 동시에 또 다른 존재를 내 집에서 발견했다.

그건...

 

[절 베지 말아주세요.]

 

집 뒤에 30년된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가 태어난 뒤에 심으신 것인데, 아마도 내 결혼식때 태우려고 준비하신 나무인 듯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들려주신 말이 있었다.

 

지우야. 자작나무의 어원이 뭔지 아니?”

 

아니오...”

 

그때 나는 대를 이어 목수가 되라는 아버지에게 반항 중이어서 나무와 관련한 말은 듣기도 싫어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부드러운 말이라도 듣기 싫었다.

 

저건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단다. 원체 기름기가 많아서... 결혼식 때 태우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지.”

 

결혼식때 태우면 좋은 소리가 난다...그렇게 아들의 결혼을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남겼던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기 3년전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자작나무가 캣타워가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런 존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무에 손을 갖다대면, 나무가 말을 했다.

그건 처음 아들이 돌을 지났을 때 장난감을 만들어주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절 베지 마세요.]

 

?”

 

처음에는 내가 미친 줄 알았다. 밀려오는 일거리때문인 줄 알고 말 그대로 전기톱으로 베어버리려고했지만 날카로운 음향이 귀를 파고들었다. 귀에 고통이 밀려왔고 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야. 이 나무 말하는 건가?”

 

[. 제가 말했어요. 절 살려주세요.]

 

자작나무는 고통스럽게 호소했다.

 

[저는 당신이랑 나이가 같아요. 그러니까 당신의 형제이기도 한거죠. 베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형제를 베진 않을 거잖아요.]

 

형제고 뭐고를 떠나서 실수로 긁기만 해도 엄청난 소리를 내는 탓에 나는 그 자작나무를 내버려두었다. 싫어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등등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버지가 자작나무가 어째서 희생적인 나무라고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목수 생활을 하는 동안 하루, 이틀, 135년이 흘렀다.

자작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다 베어져가는 동안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가끔 내가 다른 나무들을 베러가거나 숲에서 산책을 하고 있으면 내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우산을 준비하세요. 비가 오려고 해요.]

 

알았다.”

 

아들의 묵직함을 발견한 순간, 또 발견한 하나의 이상한 생명체. 처음에는 귀가 시끄럽고 귀찮고, 열받았지만...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다.

 

[옆동네 물푸레나무는 베지 마세요. 많이 아프다고 해요.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거에요. 가구로 썩 좋지 않아요.]

 

자신이 베이는 건 싫어하면서 다른 나무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이걸 가르켜서 여우같다고 하는 건지 어쩐 건지...

 

비가 좀 온 날이 있었다. 오전이 맑았기에 오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딱 자작나무 밑에 올때쯤 되자 비가 똑똑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가방은 내가 들고 있었는데, 그 가방 안에는 미술수업 과제물이 들어 있었다. 물이 배이면 안된다고 징징대는 아이 때문에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근데 갑자기 물방울이 떨어지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

 

[저한테서 비를 피하세요.]

 

자작나무가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굉장히 귀엽네요. 당신도 작은 시절에는 꼭 저랬어요.]

 

자작나무의 친절에 당황해서 하늘 쪽을 쳐다보니 자작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모아서 비를 막고 있었다.

 

고맙다.”

 

[별 말씀을]

 

아빠. 누구한테 이야기하는 거에요?”

 

자작나무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나와 자작나무의 비밀을 모르는 아이들은 자작나무에 기어오르기도 했고, 가지를 말 타는 것처럼 타고 흔들어대다가 가지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작나무는 소리내지 않고 꾹 참았다가 내가 자신을 만나러 가면 이야기했다.

 

[이쪽 가지는 남자 쌍둥이가 말을 타던 가지고...]

 

상처투성이였지만 자작나무는 행복해보였다. 내가 발견하기 전 자작나무는 혼자였고, 앞으로도 혼자였을 것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자작나무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쌍둥이도 큰 아이를 이어 학교에 들어가던 날, 자작나무는 소리없이 자신의 가지로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쌍둥이는 자작나무를 끌어안으며 좋아했지만, 이내 학교에 적응하느라 자신들의 자작나무를 조금씩 잊어갔다.

 

큰아이와는 달리 쌍둥이는 자작나무를 그렇게 길게 기억하지 않았다.

자작나무는 이내 나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내가 자작나무를 만나게 된 이후 거의 10년만에 자작나무는 처음으로 전기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직도 그 전기톱 갖고 계신가요?]

 

? 그건 왜? 전기톱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왼쪽 가지가 근지러워요. 잘라서 쌍둥이 그네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저쪽 늙은 소나무 밑에 매어두면...]

 

하지만 난 차마 그 가지를 베어낼 수가 없었다. 대신 조그만 나무를 하나 구해 가공해서 자작나무 밑에 달아주었다. 그네를 아이들이 좋아하면서 타자 자작나무도 기뻐했다.

 

당신 아버지 말야.”

 

아내가 어느 날 내게 지나가듯 말했다.

 

내가 당신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건 다 아버님 덕분이야. 당신 그거 알아?”

 

“...?”

 

몇 번의 헤어짐 끝에 결혼한 것은 모두 다 나의 지극한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찔끔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사라진 오전에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내 아버지가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오동나무를 심었던 이야기와, 내 나이에 맞춰서 키운 자작나무를 보여준 이야기 등등.

 

아버님이 그러셨지. 미숙한 자작나무지만 잘 부탁한다고.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밝은 빛을 내는 나무라고. 내 아들은...희생적인 아이라고. 그런 의미로 저 자작나무를 심었다고 말이야.”

 

사업에 큰 불운이 닥치지만 않았어도 나는 죽 이렇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공사업은 항상 그렇듯이 큰 돈을 벌 수는 없었다. 더더군다나 공방에는 시골이라 사람들도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내 중학교에 들어갔고, 더 이상 그네를 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교육이 필요했고, 사업이 쪼들리면서 한군데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이 입양처를 향해서 떠났고, 그 뒤에는 그동안 불어난 개8마리가 각자의 입양처로 떠났다. 그 다음은 우리가 될거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나무들을 팔았다. 처음에는 오래되고 좋은 적송을 팔았고, 그 다음에는 조경용 물푸레나무를 팔았으며 수령 64년 되는 산수유나무 밤나무 등을 팔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작나무가 남았다.

 

[오래간만이네요.]

 

나의 자작나무는 늙었다. 내가 늙어가는 것보다 더 사람같이 치매에 걸린 것 같았다. 하긴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하루하루마다 들으니 그렇게 변해버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

 

[그래요...이제 떠나는 거군요. 부탁이 하나 있어요.]

 

?”

 

[혼자 있기 싫어요.]

 

그래도 어쩌겠어. 이젠 헤어져야 해. 너도 알잖아. 벌목꾼들이 오면서 하는 말 다 들었을거잖아.”

 

[베어가주세요.]

 

? 너 그렇게나 베지 말아달라고 했었잖아.”

 

[외로워요.]

 

자작나무는 잎을 떨구었다. 아마도 나무들 세상에서는 그것이 눈물을 흘리는 것일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자신의 형제를 해치는 사람은 없어. 자작나무야.”

 

[하지만 당신이 가고 나면 어차피 다른 사람이 절 베려고 할걸요.그건 당신도 알잖아요.]

 

자작나무는 내게 노래를 하나 들려주었다. 나무의 음성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숲들이 나를 지켜보고 키워왔던 이야기...

나는 노래를 뒤로 하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자작나무를...벨 수 없었다. 이미 내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래전부터 자작나무는 물건이 아니라 내 형제였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빠른 시간내로 돌아와 자작나무와 함께 하리라.

그것이 나의 생태계이므로. 나의 숲. 나의 형제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