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시지요.”

 

성주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나도 예를 표한 후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왕의 패설사관 대리가 참살당했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설사관 대리가 왔다는 말도 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공문을 못 받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참요를 다 들으시는 건 아니시겠지만 요즘 희한한 노래가 돌고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천사요곡이란 노래입니다만. 그 노래는 왕도 부하도 없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지요. 요망한 노래입니다.”

 

저는 공문의 수신여부에 대해서 여쭤본 것입니다만.”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적오의 건과 내용이 동일하였다.

혹시 적오가 다시 끼어든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적오는 전서구로 중앙의 압박이 심해지자 사라졌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 정도 일을 기획하기에는 그녀의 힘이 약했다.

그녀는 물론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종교열을 자극하기에는 그녀의 권력욕이 강했다.

 

그럼 그 천사요곡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혹자는 그 노래에 마법의 기운이 스며들어 가만히 있는자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문만 들었고,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패설사관님께 알려드릴 수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전하의 명을 받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전하의 명을 필부의 명으로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 말에 그는 읍했다.

적어도 행동에 실행력은 있어 보였다.

 

좋습니다. 배후에 있는 자를 잡으면 그때는 확인이 되겠지요. 다만...”

 

“...다만?”

 

그 천사요곡을 듣고 미친 자들을 한번 보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여러갈래로 땋아서 윗머리에 붙인 모양이 오랑캐의 머리장식을 보는 듯 했다. 그녀는 성주에게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다구를 내려놓았다.

 

차를 권한다는 것이 늦었습니다. 한잔 드시지요.”

 

. 저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는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이라면 독을 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무색무취한 독이 있다면 당하기 쉽겠지만, 그런 독은 아직까지 의원들도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차는 다르다. 그 향기와 맛이 독이 섞여도 알 수가 없거니와, 각 지역별로 향미를 가하는 곳도 있어서 독살당할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이미 적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명을 받들고 간 패설사관이 참살당한 곳이 아니던가.

 

산조인차입니다만, 소화를 돕고 잠이 잘 오게 해주는 약입니다. 여독을 푸시기에 좋은 것 같아서 내어오라했는데...”

 

섭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 보니 호인 중의 호인이라는 인사평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 했다.

걱정마십시오. 여행에는 익숙한 몸입니다. 늙었지만 아직까지 왕의 패설사관으로 일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투였다.

하여간 그와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사신들이 묵는다는 저탞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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