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병률이 국회의원 비서관이 되었는데도 예전과 다름없이 낮에 카페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했다. 결혼하면서 안정적인 직장은 가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활달한 성미는 본래 안정과 맞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왕언니가 그녀에게 눈짓으로 카페 창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1시간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희가 그에게 커피를 가져오도록 해달라고 주문까지 했다고 했다.
윤희는 눈치를 보면서 커피를 손님앞에 내려놓았다. 성격이 활달한 윤희가 이렇게 주눅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저...”
“제수씨.”
첫만남인데도 이 남자는 대뜸 그녀를 제수씨라고 불렀다. 윤희는 이 모든 게 무척 불편했다.
남편의 바뀐 환경도 그랬지만 요즘 뜬금없이 그녀와 그의 집 주위를 돌고 있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존재도 그랬다. 도대체 남편은 어떤 일을 시작할 생각인걸까. 현명한 그녀는 그것이 무서웠다. 남편은 그녀에게는 한없이 따사로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녀석은 이제 필요없어. 신경쓰지마.]
문앞에서 커피를 들고 있을 때 들리던 나지막한 남편의 목소리가.
[이젠 더 이상 꼼짝도 못할 거야. 날 믿어도 좋아.]
“전 선생님의 제수씨가 아닌데요...”
주눅은 들었지만 본 성격이 어디로 가지는 않는다. 윤희는 당돌하게 그에게 말했다.
“하하. 병률이가 제 이야기를 안 했나보군요. 저 정찬일 국회의원한테 병률이를 소개해준 사람입니다. 정찬일 러브 팬카페 회장이기도 합니다. 이모저모로 병률이한테 도움을 받고 있었죠.”
“.....”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가끔 병률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 몇 번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병률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그 형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병률은 폭음을 했다. 그 정도로 이 남자의 이미지는 윤희의 내부에서 좋지 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요...?”
“제수씨. 아니 이 호칭은 불편하다고 하셨던가. 혹시 정치인의 부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성격이 워낙 활발해서 좋은 이미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
“네?”
윤희는 그제서야 자신이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꼭 한번쯤 벌어질 일. 그리고 그 뒤가 개운치는 않을 거라는 것도.
“그건 남편한테 물어보실 일 같은데요.”
그녀는 그렇게만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그 기분 나쁜 남자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남편은 지금 그녀가 모르는 무슨 일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국회의원 비서관을 한다고 했을 때도 그게 무슨 일이냐며 웃었지만, 웃을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가버린 후였다.
그녀는 그 남자를 지나쳐 온 후 왕언니에게 오늘 하루는 쉬겠다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몸의 후들거리는 느낌이 꼭 감기가 심하게 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