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친구였으니 뒤를 캐는 것은 쉬웠다. 우선 그놈의 말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고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들의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어차피 고등학교 동문이었기 때문에 측근들의 전화번호만 확인하면 되었다.

그날 자신과 그놈은 비번이었다. 아내는 오전에는 그가 글쓰는 것을 보고 있다가, 오후에 장을 보러나갔다.

 

[여보, 내가 같이 안 나가도 돼?]

 

그의 말에 아내는 빙긋 웃었다.

 

괜찮아. 여보. 두 사람분이니까 힘도 센걸.”

 

그걸 농담이라고 하고 있어?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 그때 그 농담을 듣고 그냥 보냈을까.

지금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 걸 그녀가 미리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더라면.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는 그게 답답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놈이 아내를 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놈이 예전의 그 친구가 맞는 것일까...

 

, 병률이?”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였던 B는 그놈의 중학교때 친구이기도 했다.

 

걔 이름 들으니까 오래간만에 반갑네. 너도 간만에 전화해서 그런가 되게 반갑구. , 평소에 전화 좀 하지. 아냐, 이렇게 전화한 것만 해도 어디냐. 요즘 뭐해?”

 

쉬고 있어.”

 

길고 긴 수다 끝에 술자리 한번 하자는 말로 대화는 끝났다. 실속은 없었지만 적어도 실마리를 잡을 건수는 생긴 셈이다.

 

, 병률이? 그 녀석 싫은 녀석인데. 길거리 똥개 보기 싫다고 우리 체육선생이 기르던 유기견을 발로 찼잖아.”

 

유기견을 발로 찬 것 정도로는 살인범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20명의 고교, 중학 시절의 친구를 인터뷰 한 것으로는 내용이 빈약했다. 그렇다면 아내쪽은 어떨까?

 

어머, 지혜 이야긴 많이 들었어요. 그래, 얼마나 상심하셨어요...”

 

아내의 동창들은 진짜 친한 친구빼고는 거의 다 그녀의 죽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내의 전화번호 목록 중에 최근 아내의 신변에 대해서 깊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약 2명에서 3명 정도였다.

 

지혜가 그러는데 요즘 뒤를 누가 밟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경찰인데 왜 그 이야길 안 하냐고 그랬더니. 걱정할까봐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자기 기분 탓일 수도 있다고.”

 

걔가 아저씨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평소에도 늘 피곤에 절어서 사는데 애 쓰게 할 순 없다고 그랬죠. 그때 이야기 듣고 걱정 많이 했어요. 얘가 뭔 일 있구나 싶었죠.”

의외로 쉽게 나오는 답변들. 그는 거기서 그놈이 아내에게 접근한 것이 오래되었다는 걸 알았다. 한 사람 밖에 없지 않은가? 아내의 손가락이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는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밥을 먹어야했다. 식욕이 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뒤를 허무하게 따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원수를 갚아야 했으니까.

냉장고에서 얼마 전에 아무렇게나 사들인 3분 요리를 꺼내서 데워 먹었다.

아내가 했던 반찬들은 이미 다 먹고 없었다. 깔끔한 성격의 여자였기 때문에 썩어서 버릴 것도 없었고 매일매일 반찬을 새로 만들었으니까.

 

내가 꼭 잡을게. 지혜씨. 내가 꼭 잡아서 당신의 억울함을 풀어줄거야. 어떻게 그렇게 갈 수가 있어. 지혜야...”

 

그는 밥공기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번호를 보니 그놈 집 전화번호였다. 기분 나빠서 끊어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상냥함이 가득 담긴 그놈의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길준씨. 오래간만이에요. 요즘 식사 잘 하시고 있나요? 괜찮으시면 우리 모레 병률씨하고 나랑 같이 식사나 같이 해요. 병률씨가 걱정 많이 하더라고요. 밥은 제대로 챙겨먹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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