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진중우가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옆에는 찰과상을 입은 승아가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마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처럼 특실에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납치당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오로지 붉은 자국이 선명한 손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때 승아가 눈을 떴다.

 

"중우씨, 깼어?"

 

"승아야...어떻게 된거야?아니, 너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내가 문제야? 중우씨가 더 문제야. 이틀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걸."

 

"......"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그는 그때 정신을 잃었던 것이 아니었다.
문이 열리면서 [유령]은 화염병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던졌다. 그것까지 예측하지 못한 측근들은 불이 붙은 아버지에게서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더 타들어갈 뿐이었다.
유령은 하하하하하 웃으면서 들고 있던 주사기를 여기저기 들이댔다.
측근들은 하나 둘 피했고, 중우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불이 더 번지기 전에 막아야했다.
그때 승아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뒤에는 길원택이...

 

"안돼! 그만 해요!"

 

유령은 그녀가 달려오자 탐욕스런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중우씨!!!!회장님!!!!!"

 

"그만 해라."

 

길원택이 냉정한 목소리로 유령에게 말했다.

 

"복수심에 눈이 멀었군. 복수를 하려면 냉정하게 해야지. 이게 뭐야. 잔치라도 벌이겠다는거냐."

 

"그거 누구한테 할 말인데. 이 위선자야."

 

유령은 그르르륵 거리면서 길원택에게 퍼부었다.

 

"나한테 , 내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게 한 게 누구야! 네놈들이잖아. 너도 마찬가지지. 이때까지 날 속여놓고선 이제와서..."

 

길원택은 유령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 그만하자. 넌 너무 일을 크게 벌였어."

 

"안돼."

 

유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원택은 유령의 손에 쥐어져있던 주사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 순간.
길원택은 유령의 칼에 찔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유령은 그 사이에 중우의 묶인 손을 풀려고 가던 윤승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37.

 

"아버지는..."

 

진중우는 퇴원하면서 승아에게 물었다.
승아가 고개를 저었다.

 

"회복을 결국 못하셨어...충격받을까봐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네 약혼자는?"

 

"....."

 

승아는 말을 아꼈다.
진중우도 결국은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사태를 그나마 막았던 것은 길원택이었던 것이다.
그때 일로 남부지역의 조직폭력배들의 1/3이 궤멸당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연관된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일을 처리해왔던 것은 나쁜 일이었지만, 그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치명적인 일에 끼어든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모르겠어. 시신 찾는 중에는 없었어."

 

 

 

 

 

 

"말해!"

 

"뭘 말이에요?"

 

진중우가 비틀거리는 동안, 승아는 유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 여자가 되겠다고 말해!"

 

"....컥..."

 

그 순간 다시 연쇄폭발이 일어났다. 승아는 몸부림을 쳤지만 유령은 칼을 승아의 목에 갖다댔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내 말을 들어!"

 

"중우씨!!!!"

 

"오, 저 놈도 참 남아 있었지..."

 

유령이 허리에 차고 있던 화염병을 중우에게 던졌다. 중우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겨우 피했다.
유령은 승아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로 중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길원택이 그녀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나하고 결혼해줄래?]

 

[...네?]

 

[결혼해줘. 난 널 사랑해.]

 

[이 상황에서 그 말이 나와요?]

 

그 말에 길원택은 자신의 옆구리에 꽂힌 칼을 가리켜보였다.
 행동의 의미를 깨달은 승아는 처음으로 길원택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유령은 길원택이 휘두른 칼에 맞아 쓰러졌다.

 

"조직폭력배들이 거의 다 죽다시피한 아수라장이었지요. 아버님 일은 참 안되셨습니다만, 그 사고에서 그렇게 목숨을 건지신 것만 해도 다행인 겁니다."

 

그 두 사람은 경찰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나왔다. 항간에서는 회장의 비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알고 있는 세 사람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길원택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38.

 

두 사람은 천천히 손을 잡고 걸었다. 그리고, 죽은 [유령]의 묘지를 찾아갔다.
아무도 이름도 알 수 없고, 끝내 자신의 이름을 되찾지 못했던 남자의 묘지.
승아의 기억에는 좋지 못했지만, 적어도 진중우는 그렇게라도 잘못을 갚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승아와 진중우는 [유령]의 묘지 위에 하얀 안개꽃을 두고 떠났다.

 

39.

길대표가 운영하던 단체는 그대로 진중우가 인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승아는 아이돌을 뛰어넘은 명가수가 되었고(여기에는 진중우와 손을 잡은 나카모토 키요시의 작품 덕이라는 설이 우세했지만 진중우는 그걸 부인했다.)얼마 뒤 은퇴해서 진중우 사장과 결혼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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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8-06-04 0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