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유령은 자신의 얼굴의 붕대를 풀고 손가락 지문까지 확인하는 길원택에게 물었다.

 

"고쳐주실 생각이 드디어 드신 겁니까?"

 

"......"

 

길원택은 이미 의사가 아니었다. 의사자격증이 있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메스를 잡지 않은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대학에 있을 때는 나름 손이 재빠르고 정확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고, 그건 사실 지금도 그랬다.

 

"자넨."

 

길원택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분노가 풀려서 좋은가?"

 

"......"

 

"우리를 이렇게 만들다시피 한 그 작자가 죽어서 좋지? 난 적어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서 내 딸처럼 키워온 그 앨 그런 취급을 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지. 아마 자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유령은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그런 건 용서해줄 수 있어. 우린 목적이 같아."

 

하얗게 쭉 곧은 등을 무시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살짝 뒤돌아보는 완벽한 사십오도 각도의 왼쪽 얼굴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다가 잠시 실수했을 때 살짝 웃으면서 드러낸 덧니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언젠가 선생님을 배반하고 신고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자넨 그렇게 못해. 사고 이후 자넨 여자란 실물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니까. 그 아이만 보면 두근두근 거리겠지. 날 신고하면 자네도 잡혀들어갈테고...더 이상 그 애도 보지 못하겠지. 자네가 언제 그 꼴이 된 후부터 피와 살로 된 인간과 제대로 대면이나 한 적이 있었나?"

 

"......"

 

"옛날 이야기 한번 더 듣고 싶나? 그러면 날 신고할 생각이 사라질 거야."

 

듣고 싶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길원택은 천천히 옛날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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