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진중우는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물론 보디가드들이 역시나 그를 뒤쫓아오고 있었고, 모르는 것은 그 하나 뿐이었다. 형은 그가 몰래 빠져나갈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도망가도 막지마.]

 

진진우가 보디가드들에게 이른 말이 있었다.

 

[어차피 가도 윤승아라는 아이돌 가수 대기실에 있을 거다. 대기실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해도 되니까.]

 

무대는 절찬이었다. 윤승아와 길원택의 멋진 사랑 이야기가 부풀려진 것도 있었지만 아이돌답지 않게 뮤지컬 무대를 잘 소화해낸 탓도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엄청난 전달력을 가져야 하는데 아이돌 배우로서는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철저한 길원택의 지도탓에 윤승아는 가수로서도 굉장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오늘도 성공이야. 대단해. 승아씨."

 

길원택의 칭찬에도 승아는 어설프게 웃을 뿐이었다. 뭔가 진심이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위화감을 느낀 길원택은 앞을 바라보았다. 대기실 앞에 중우가 서 있었던 것이었다.

 

"아, 열광적인 후원자님이 오셨군."

 

최대한 말을 비꼬듯이 하면서 길원택은 자리를 피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방해꾼은 물러가죠."

 

"저...기."

 

승아의 말에 길원택이 냉랭하게 대꾸했다.

 

"됐어."

 

"대성공이야. 승아야. 근데 우리 간만에 만났는데 이야기 좀 하자."

 

중우의 반가운 얼굴에도 불구하고 승아는 초조해했다.

 

"자, 대기실에 들어가던지, 아니면 우리 밖에..."

 

"아니, 분장 지워야 하니까 우리, 대기실에 들어가요."

 

단독 대기실에는 꽃들이 잔뜩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길원택과 연관된 사람들이 보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승아는 떨리는 손으로 분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얼마만이야. 저번 무대 이후로 우리..."

 

"...안 만났으면 좋았을걸."

 

승아의 말에 중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잘못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도대체 그 기사는 무슨 말이야?"

 

"응?"

 

사태파악을 미처 못한 중우에게 꽃다발이 던져졌다. 승아가 울면서 꽃다발로 중우를 내리친 것이었다. 그건 중우가 들고온 빨간 장미다발이었다. 꽃잎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난 이미 약혼했어! 이제 와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날 보고 어쩌라고!"

 

"......"

 

이번에는 응? 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중우는 그제서야 사태를 깨달았다. 바로 그 기사!

 

"거짓말이지? 그 남자하고?"

 

"......"

 

"말도 안돼! 널 좋아하는 건 나야. 저 남잔..."

 

"그분은 날 너무 사랑하셔."

 

"거짓말! 넌 그 사람 안 좋아하잖아."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겠어. 널 구해준 사람인걸. 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날 지금의 위치로 올려준 분이란 말이야."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 돌아가신 선생님 무덤에 가서 잠깐 서 있기만 해도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당장 알 수 있을 거야. 좋아한다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그 손하고 겁에 질린 얼굴은 대체 뭐야?"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중우씨는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거짓말 하지마. 네가 거짓말 하는 거 당장 증명해줄 수 있어. 분장 다 지웠지? 우리 나가자."

 

차분함을 가장한 채 윤승아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 조금 있으면 또 레슨 있어."

 

"나가는 거야. 넌 오랜 친구로서의 내 말도 무시하는 거야? 제발!"

 

승아가 듣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말했지만 중우는 그녀의 팔을 잡고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나가기 시작했다. 여자 말을 안 듣고 우악스럽게 나오기는 길원택이나 진중우나 마찬가지긴 했다.

 

"'어디로 가."

 

"네 부모님 무덤에! 거기 가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 넌 지금 길대표한테 귀도 먹고 눈도 멀었어."

 

그 둘은 황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운 소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지켜보던 다른 두 사람도 자기가 탄 차로 윤승아와 진중우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