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승아의 공연이 있는 날, 중우는 어떻게든 가출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날렵한 보디가드들이 버티고 있어서 좀 힘들 것 같긴 했지만 어느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는데.

 

"적어도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톱스타를 사귀어야지.아이돌은 말구, 그래 뭐냐, 가녀리면서도 우수에 차 있으면서도 풍만한...그래, 이를테면 여배우같은..."

 

감을 잡은 형이 어느새 따라와서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그의 등을 잡고 끌어냈다

 

"그래야 그쪽 여자들도 입을 다물고 얌전히 있는단 말이다. 하긴, 그 댓가로 얻어지는 선물이 커서 그렇지. 너도 그러니까 톱스타 하나 붙잡아서 데리고 놀라고. 진지하게 놀지 말고. 그때 그 사고도 엄밀히 말하면 그쪽 책임이잖아?"

"형! 하지만 기사에는..."

"우리 소속사 띄우려면 뭔 짓인들 못하냐."

"......"

"넌 한동안 집에 있어라.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그 여자애랑 엮이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라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못 들었었냐? 근본은 안 바뀐다고...."

"그건 무슨 소리야..."

"우리 회사는 그냥 회사가 아냐. 필요하면 마피아로도 변신할 수 있어. 그게 회사고, 조직이지. 그것만 알아둬."

"개인정보를 수집했단 말이야? 그건 불법이야!"

"너를 위해서다."

"형!"

중우의 형 진진우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들려주면 안될 험악한 이야기였다.
순수하고 성실한 후계자가 될 중우에게 이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어떻게!
마약밀수상과 얽힌 여자애를 여자친구라고 데리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그건 그룹의 이미지상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일이었다.

 

쾅!

 

진진우는 문을 있는 힘껏 닫고는 동생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 사업은 네가 하는 사랑 놀음하고는 전혀 별개야. 우리가 하는 건 전쟁이지. 연애가 아니거든. 정 못 견디겠으면 바지사장 시켜줄테니, 그냥 보고나 있던지. 그 길원택이란 놈 아주 질이 나쁜 놈이야. 뿌리를 뽑아버려야 해."

 

"...형?"

 

"이건 전쟁이다. 그것만 알아둬라."

 

 

23.

그와는 반대로 길원택은 장난감 반지를 손에 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파라치가 키스신을 찍었고, 잠깐 얼이 나가긴 했다. 하지만  그전에 남는 여유시간에 아이스크림 부록으로 나오는 장난감 반지를 꺼내서 끼워주기도 했다.

 

"원...택씨..."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면서 승아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노릇이었다. 진짜 반지를 끼워줘도 곤란하겠지만 이런 싸구려 장난감을 끼고 무대에 올라갈 수도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놀림거리가 될 테니까. 여자 아이돌에게 곤란한 것은 열애설이 불거지는 것과 촌스럽다는 딱지가 붙는 것이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왜? 싸구려라서 그러냐?"

 

원택이 빙긋 웃었다. 화단에서 남들 몰래 나와 있는 기분도 괜찮았다.
대부분의 경우는 몰래 몰래 데이트를 하지만, 어차피 그 사고 이후부터는 공인된 사이였으니까.

 

"지금은 일이 바빠서, 네 단독 공연때문에 너도 정신이 없으니까 반지 따로 하러 못 가지만, 여유 좀 나면 시내에 공방에 가서 아주 예쁜 걸로  맞추자. 비싼 것 좋아하면 그렇게 맞추고.."

 

"....대표님도.."

 

"어허, 대표 아니라니까, 길원택. 원택씨~ 이렇게 부를 수 없어?"

 

하지만 승아는 그렇게 부를 수 없었다. 승아에게 있어서 원택은 항상 그 위치에 있었다. 무대의 샹들리에 모양을 한 조명 장치에 그대로 얼굴과 손을 댄 바로 그 위치에.
그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또 다른 의미에서는 천국이었다. 승아가 그토록 겁내던 가난에서 벗어났다. 아버지 두 사람은 그대로 세상을 떴지만 길원택이 지금은 옆에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엄하긴 했지만 그가 지도하는대로 걸어나가면 모든 게 다 성공이었다.
다소 유감이라면 이번 성공을 함께 기뻐해줄 동료나 선생님들이 사고나 지병으로 숨졌다는 거겠지만...

하지만 중우라면 기뻐해줄 것 같았다. 오랜 친구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