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뮤지컬은 성대하게 끝났다. 세 사람의 죽음과 함께.
주연인 윤승아의 인기는 놀랄 정도로 치솟았고, 동시에 길원택과의 열애설도 더욱 불거졌다.
물론 사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승아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뮤지컬이 끝나면서 길원택의 태도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는데 있었다.

 

"승아씨."

 

승아야 에서 승아씨로 호칭이 우선 바뀌었고, 억지로 질질 끌고 나가지도 않았다. 뮤지컬 연습 당시 춤연습 시킨다고 강제로 손을 잡고 연습실을 질질 끌고 다녔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였다.

 

[손 잡아. 다리 질질 끌지 마. 자 여기서 음악 나간다. 손에 힘빼!]

 

길원택의 살짝 일그러진 얼굴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역시나 약간 데인 손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올리면,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유령]은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매직 미러로 보기도 했고, 탈의실에서 살짝 문을 열고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길원택의 취향에 맞춰서 수정된 의상을 입고 그녀가 춤을 추는것이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풀나풀 춤추는 18세 아이돌에게 그만 이 [유령]은 반해버리고 말았다.(그는 그 이전에는 아이돌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다.)
그 뒤로 유령은 이 두 사람 사이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길원택도 모를 정도로.

 

"승아씨."

 

햇빛 좋은 날이었다. 두 사람은 길원택이 새로 짓기로 한 스튜디오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간만에 길원택의 신경이 풀어져 있었기 때문에 승아도 기분이 좋았다.

 

"네?"

 

"날씨도 좋은데 우리 뽀뽀나 할까?"

 

그건 농담이었다. 길원택이 자기랑 사귀면 이런 것도 알아야 된다면서 가르쳐준 농담.
우심뽀까.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할까?

 

'"대표님도 참..."

 

"그동안 내가 너무 심하게 했지? 연습량만 해도 지긋지긋했을거야. 그래 내가 미웠을 수도 있겠다. 정말 날 미워했지?"

 

"참...대표님도..."

 

"내가 왜 네 대표야?"

 

"그럼요?"

 

"내 이름 불러봐. 자, 원택씨~하고 불러봐."

 

"네?"

 

"우린 약혼한 사이야. 다른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자, 사귀고 있잖아. 연인 사이에 대표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원...택...씨..."

 

그 입에서는 원택의 이름이 아니라 중우의 이름이 나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승아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탓하면서-적어도 지금의 자리를 마련해 준것은 길대표였으니까. 연습생 시절도 거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시켜 단독 아이돌로 세워줬으니.-억지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 그렇게 싫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약간의 허영심도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어요. 우린 이대로 가면 완전히 성공할거에요. 그런 마음.

 

"아이고, 웃는 얼굴도 이쁘네, 그럼 기왕 말 나온 김에 반지도 하나 하자."

 

길원택의 진지한 반응에 승아는 다시 질겁하고 말았다.

 

"반지요?"

 

"왜 그렇게 놀라?"

 

[유령]은 숨을 죽였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저 남자는 자신을 이용해서 얻을 걸 다 얻어낸 후, 그 다음에는 연인의 사랑까지 얻으려고 하고 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치받아올라왔다. 그런데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령은 얼른 몸을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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