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잘 치는 건 집안 내력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길원택의 뛰어난 머리에는 의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길원택은 음악을 좋아했지만 아버지의 명에 따라서 성적과 인맥, 돈을 이용해서 어렵지 않게 서울대 정형외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그 소녀를 보지 않았다면 길원택은 음악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병원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사랑하는...]

 

곡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소녀의 목소리였다. 반주도 중요하지 않았다.
반주는 바이올린이었는데 무척 서툴었다. 소년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

 

소녀의 음성에 그제서야 길원택은 환상에서 깨어났다.

 

[아버지.]

 

자신의 아버지가 언제 한번 자신에게 그토록 따뜻한 존재인 적이 있었단 말인가?
그저 원하는 것은 의사, 의사, 의사. 의사로서의 자신뿐이 아닌가 말이다.
그제서야 길원택은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닌 그저 주어져서만 하는 일. 이게 무슨 소명이란 말인가. 자신에게 소명은,...

음악이다 오로지 음악이다.

당연히 아버지는 반대할 게 뻔했다. 그리고 합당한 이유를 대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합당한 이유따윈 없었다. 단지 음악은 그저 에전부터 그의 목숨같이 질긴 것이었고 주어진 것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다면 집을 나가자. 그는 그렇게 단 한번에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

 

그리고 그의 운명을 바꾼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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