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흰토끼를 따라서 구멍으로 빠져들어갔을 때 내 손에는 패스포트 한장이 들려 있었다.
구멍은 끝도 없었고, 어느 샌가 흰토끼는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선물받았기 때문에 불안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별 거 아니잖아. 코커스 경주라던가, 아니면 기껏해야 물약을 마시고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 뿐이야. 앨리스는 그런 걸 몰랐지만 난 다 알고 있잖아?
어느샌가 구멍에서는 촉촉한 향수가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나는 내 손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우산을 엉겁결에 펼쳐 향수의 비를 막아냈다.

 

'뭔가 다른 것 같은데?'

 

패스포트에는 형광색 글씨로 [날 읽어봐요.]라고 적혀 있었다. 도저히 읽고 싶지 않은 문구였다.

 

'별로 읽고 싶지 않아.'

 

그러자 패스포트에 적힌 단어가 달라졌다.

 

[다음 코스로 못 갈 수도 있습니다.]

 

협박 아닌 협박에 패스포트를 펼쳐들었다.

 

[도도의 코커스 경주로 초대합니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았다.
어느 샌가 촉촉하게 뿌리던 향수비도 그치고 내 손앞에 또 어떤 손이 나타나 내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뺏아들었다.

 

"실례! 도버해협에서 비가 와서,"

 

도버해협이 어딘지 알게 뭐람.
끝도 없이 떨어져내릴 때 갑자기 사뿐, 내 발이 땅에 닿았다.
땅 치고는 꽤나 폭신폭신했지만.

 

"아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도, 도. 도지슨!
도도 선생!

 

"누가 내 등에 떨어진거야? 막 코커스 경주를 하려는데."

 

"아, 실례해요. 막 떨어져내린 거라서."

 

"요즘 어린 것들은 예의가 없어. 말로만 하면 뭘해. 입장료를 내야지."

"얼마를 드리면 되는 거죠?"

"단추 한개."

 

입장료가 단추라면 다 돌고 나면 옷의 단추가 하나도 안 남겠다.
그 코커스 경주라는 거 하나도 재미없지만, 어쨌든 하고 나니 졸리웠다.
계속 걷고 또 걸어가니 먹는 걸 파는 테이블이 보였다. 바로 매드 해터와 도어 마우스와 마치 헤어의 미친 티파티.

 

"어서와. 여긴 언제든지 티파티지. 앉아."

매드해터의 초청에 앉긴 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수십번을 읽었지만 항상 대답하기 곤란한건 매드 해터의 이야기다.

 

"넌 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

 

"얘도 모른데. 왜 요즘 애들은 이렇게 멍청한거지?"

"말 조심해. 마치 헤어. 요즘 손님들은 무서워."

 

도어 마우스가 찻주전자로 빠지려는 것을 건져내면서 마치 헤어가 툴툴거렸다.

 

"자 바꿔앉자!"

 매드해터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잠깐만요. 난 아직 못 마셨어요."

"그래?"

 

도어마우스가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마저 마시고 자리를 바꿔."
 
배가 고파서 꿀바른 토스트를 먹고 홍차도 한잔 가볍게 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바꾸라고 외치던 마치 헤어도 어느샌가 잠들었는지 한쪽 발은 다른 의자에 놓고 엉덩이는 본래 앉아있던 의자에 놔둔채로 코를 골고 있었다.
단지 매드 해터만이 십실링 이 펜스라는 쪽지를 단채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넌 알고 있니. 책상과 까마귀의 공통점이란~!"

 

패스포트에 다시 글자가 찍혔다. [하트퀸과 백작부인의 라크로스 경주에 초대합니다.]

...무시.

[아기돼지가 백작부인의 집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무시.

[하트의 잭이 하트퀸의 파이를 훔쳤습니다.]

 

패스포트에 찍힌 것을 다 무시하고 나는 천천히 저 어느 나무에 있는 문을 열고 나왔다.
매표원이 패스포트를 찍다 말고(매표원은 역시나 하얀 토끼였다.)그 빨간 눈으로 주의깊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재미가 없으셨나요? 손님?"

 

"......"

 

"마지막으로 나가실 때 저희 명물 체셔캣과 사진을 찍으시면, 멋진 장정이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사인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매표원에게 패스포트를 되돌려받은 후 체셔캣과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의 서명이 담긴 초판본을 받아올 수 있었다.
앨리스 하그리브스에게. 라는 서명이 담긴 바로 그 초판본 말이다.
(어차피 앨리스 리델에게라고 적혀 있어야 옳았겠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랜드가 그 원본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하니까.)
요즘은 이렇게 환상계도 먹고 살기가 빠듯하다. 이젠 매표소까지 차려가면서 환상계에 초대해야 하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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