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희곡선집 2 -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대학고전총서 24
베어톨트 브레히트 지음, 임한순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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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생애


 이 극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1.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이를 둘러싼 교회와의 갈등, 2. 브레히트는 사회주의자였고, 마르크스는 유물론자로서 과학을 인류 발전의 토대로 보았음, 3. 당대 과학자들은 귀납법적 연구방법론을 채택하지 않고 권위자의 텍스트를 진리로 가정하고 연역적으로 논리를 전개했음. 을 알아야 한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들도 브레히트의 이 작품에 비할바가 되지 못하며 오직 쉴러의 "발렌슈타인" 정도만이 역사극 분야에서 이 역작에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가 그리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브레히트가 묘사하는 갈릴레이는 대단히 입체적인 인물로, 진리를 향해 본인을 불사르는 듯 하지만 목숨이 달리자 순식간에 비굴해진다. 타인이 발명한 망원경을 자신의 업적으로 속여 국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뜯어내고, 식도락을 즐기며 주변인들을 챙기는 듯 하다 가도 타인의 안위보다 본인의 연구를 우선시하기도 한다. 


 저자의 유물론적 관점은 사회주의의 의미가 많은 부분 퇴색된 오늘날에는 호불호가 다소 갈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근신처에서 보이는 행태를 유물론적 관점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볼 수도 있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빼곡한 주석들을 보며 브레히트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조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생애를 과하게 함축하지도, 그렇다고 지리하게 나열하지도 않은, 대단히 밀도가 높으면서 중요 내용은 거의 다 담긴 브레히트의 최고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사천의 선인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인간의 도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거지로 분장하나, 다른 마을 주민들은 신들을 전부 외면하고 가난한 노부부만이 그들을 환대한다. 제우스와 헤르메스는 감명을 받아 이들에게 보상을 내린다...


 이 신화의 내용을 브레히트는 차용하여, 없는 살림에도 거지로 위장한 신들을 소박하게나마 접대한 삼류 창녀 셴테에게 신들은 상당한 액수의 돈을 준다. 셴테는 그 돈으로 담배가게를 사지만 그 물건은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고, 그마저도 각종 빈민들이 셴테를 등쳐먹기 위해 혈안이다. 셴테는 가면을 쓰고 악역 "슈이타" 를 가장해야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신은 선량한 이에게 돈은 줬으니 할 건 했다는 기색이다.


 사회주의가 사회에 의미하는 바가 더 컸고, 종교의 가치가 훨씬 높았던 당대에는 이 작품이 강한 시사점을 지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면을 쓰고 벗음으로 사람들이 못알아 본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작품이 사회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클 때는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대에는 그냥 어이가 없고 극에 몰입만 안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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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삶, 그의 행운과 불운 달섬 세계고전 4
작자 미상 지음, 최낙원 옮김 / 달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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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레스크 소설의 원조. 악한이라기엔 주인공이 너무 선량한 감이 없잖아 있으며, 미완성이고 에피소드들간 퀄리티 편차가 커 작품 그 자체로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이 작품이 없었다면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 ˝돈키호테˝ 등은 쓰여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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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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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68혁명으로 불리지만 누군가에게는 68폭동으로 불리는 68운동은 기존의 사회질서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1966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런 작품이 고평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68운동의 도래를 예고하는 성격이 있다고 본다.


독문학에서 고트홀트 레싱과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 두 사람은 연극을 통해 대중들을 교화하고자 했다.

극에 몰입을 하게 하는 레싱의 방법론과 극에 몰입을 방해하는 브레히트의 방법론 모두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대중들은 극을 재밌게 본 것에 만족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관객모독" 은 이러한 극장과 관객들의 문화를 비판하고자 쓰여진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쩌면 관객을 모욕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브레히트가 소외 효과를 통해 등장인물의 행태에 대하여 관객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을 넘어, 이 작품은 관객을 욕함으로서 관객 그 자체를 등장인물들로 만들어버린다.

관객들은 메인 배우들만큼은 아니지만 극의 일부가 되며, 무대감독과 배우들이 대화를 나누는 등 극장의 여러 경계들은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감상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이름은 까먹었는데 누군가가 화장실 변기를 미술관에 전시했고 그게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알고 있는데, "관객모독" 도 이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객석, 무대, 무대뒤편 / 관객, 감독, 배우들의 경계를 이 정도로 해체시킨 것은 다분히 인상적이었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메타연극의 형식을 빌려 "거짓과 진실", "인간성" 이라는 주제를 세련되게 묘사한 "하녀들", "엔리코 4세",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같은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의 주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모든 형태가 무너져 내렸을 뿐이다....

나는 모든게 무너진 폐허 더미보다는 세련되게 축조된 Well-made play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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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를로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4
프리드리히 실러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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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는 바야흐로 네덜란드(플랑드르)에서 신교가 부상하고 카톨릭 왕정 스페인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시점.... 왕의 아들 돈 카를로스는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원래 카를로스와 왕비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왕이 미모의 왕비를 보고 여자를 가로챈 것이다. 카를로스에게는 절친한 친구 포사 후작이 있다. 그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사랑하는 남자다. 그들이 모여 사랑과 우정, 자유 등 다양한 내용이 전개된다.


 번역가 안인희씨의 해제에 의하면 이 작품은 원래 기형적인 가족 내 비극적인 사랑, 친구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가 글을 쓰다보니 플랑드르 지역의 자유주의 운동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 메인인 극이 맞지만, 초기 구상으로 인해 로맨스의 비중이 과하게 높다는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쉴러는 로맨스에 심각할 정도로 소질이 없다. 등장인물들이 사랑을 하는건지 아니면 논쟁을 벌이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4막까지 이 작품은 재미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은 했다. 지리하고 유치한 로맨스와 다소 인위적인 우정놀음은 왜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교조적이라고 비판받았는지 짐작가게 하는 부분이었으나, 포사 후작이 카를로스 및 왕과 만나서 내뱉는 대사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5막의 훌륭함은 4막까지의 치명적인 결함을 순식간에 만회해 버린다. 카를로스가 왕에게 분노에 차 외치고, 왕은 일시적으로 물러난다. 왕은 비정해지기를 각오하고 대심문관을 만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카톨릭 체제에 대해 토론한다(이 작품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으로, 그 유명한 까라마조프 형제들의 대심문관 파트는 이 장면의 오마주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세개의 이어지는 장면들을 읽으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을 읽었을 때와 버금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로맨스와 우정의 비중이 조금 더 낮아 1~4부의 완성도가 조금 더 높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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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처 소나타 톨스토이 클래식 1
레프 톨스토이 지음, 김경준 옮김 / 뿌쉬낀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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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차에서 만난 한 남성이 서술자에게 본인이 아내를 살해한 경위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포즈드니셰프는 학창 시절 성욕을 매음굴에서 주기적으로 배출하다 젊은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은 본인의 생각과 달리 행복에 가득찬 삶이 아니다. 음악가 한명이 그들의 삶에 개입하고,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 생각한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살해한다.


 톨스토이 본인이 쓴 해제, "크로이체르 소나타 에필로그"를 읽으며 이 작가가 노년에 도덕과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에게 있어 단순히 성욕을 풀기 위해 성교를 하고, 애가 너무 많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피임 조처를 하는 등의 행위는 전부 혐오스러운 행위다. 연애는 건전한 이성교제가 아니며, 애들은 부모의 쾌락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양육된다. 매우 지당한 말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주장하는 그대로 살 경우 인류가 존속가능할지 조차 의문이 들고, 인생이 매우 삭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분히 교조적인 의도로 쓰여진 이 작품은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오늘날 읽히지는 않을 것 같다(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톨스토이의 주장은 제법 흥미롭지만 지나치게 극단적이어서 공감하기 힘들다. 허나 야동이 없던 시절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매음굴에 방문하는 젊은이들, 아내와의 결혼, 부부관계를 통한 성욕해소 , 가정불화, 아이가 태어날 경우 양육의 번거로움과 모친 건강의 문제, TV와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여자를 사교계에 풀어놓을 수 밖에 없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불륜의 가능성, 남편의 질투 등에 대한 심리묘사 등...... 가히 당대 결혼생활의 실태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부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결혼제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대단히 시사점이 높다고 사료된다. 남자 입장에서 결혼이란 안정적이고 주기적인 성욕 해소를 하기 위함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위선이다(대한민국 사회에선 역겨운 위선자들이 판을 친다). 가정내 다툼은 상시 발생하고, 애들은 많이 태어날 수록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부모에게 많은 시간 및 정력의 소요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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