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으로 시작해 세계의 근원과 변화로 나아간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에 끝까지 나아가고, 이어 기어이 그것을 넘어버린다. 세상에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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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휴먼




남자는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남자가 직장에 가는 날이었다. 남자는 이전에 직장 생활을 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굉장히 떨고 있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넥타이를 매고, 양복 소매를 세웠다.

그리고, 구두를 신고 힘차게 밖으로 나갔다.

남자가 다니게 된 직장은 IT계열의 회사였는데,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축에 속했다. 하는 일이 없어 심심하던 그는, 혹시나 해서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버렸다.

그는 난생 처음 타보는 지하철 노선표를 사고, 개찰구로 들어갔다.

솔직히 그는 당황했었다. 그냥 냈는데 합격이라니, 그는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마음먹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다니자고 결심했다. 그는 한 번도 타 본적 없는 지하철 호선을 타고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창 저편으로 사물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회사 건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그의 자리로 않았다. 회사는 평범했다. 그가 상상해오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컴퓨터를 키고, 지시받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하는 지 궁금해져 옆 자리의 동료를 흘깃 보았다.

그것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잠들어 있고, 손만 팔에서 떨어져 나와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놀라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사람은 뭘 보냐는 듯 그를 쳐다보기까지 했다.

이상했지만, 그도 왜인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는 그의 손을 떼어내어 혼자서 일을 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기대어 잠들었다.

그러다 그는 누군가 어께를 건드리는 바람에 깨어났다. 사장이었다. 그는, 뭐 하는 건가, 어서 손을 붙이게, 라고 하고, 그의 옆자리에 자고 있던 동료의 머리를 떼어갔다. 그는 갈수록 혼란스러웠다. 그 사람의 몸은 혼자서 옆의 상자를 열고 머리를 꺼내 붙였고, 우둑, 소리를 내고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일에 집중해 있었기에 그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에 집중했다.

컴퓨터를 너무 오래 해서 그런지 그는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그는 혹시나 해서 그의 옆에 놓여 있던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하루에 하나씩’ 이란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는 그동한 오래 써 왔던 머리를 떼어내고는 새 머리를 붙였다. 그러자 머리가 상쾌해졌다. 그는 예전의 머리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었다. 다른 직원들이 머리를 열고 뇌를 한 움큼 꺼내어 컴퓨터 옆의 통에 던져 넣는것을 보고 그도 따라했다.

그는 지하철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상한 하루였다. 그가 내리는 역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리면서 손잡이에다 손목을 떼어두고 내렸다. 아깝다 싶었지만 그도 그렇게 했다.

그에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집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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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 더미를 앞에 두고,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사무실 안, 적막과도 같은 고요함 속, 그는 블라인드를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무렇게나 주차된 자동차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고, 가게는 불이 꺼져 마치 유령의 도시 같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물론 그런 건 아니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축제의 환성은 그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내일까지 다 처리해놔, 그렇게 말하고 그의 상사들은 사무실을 떠났다. 그는 거의 몇 년 동안이나 이번 축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생으로 처음 도시로 상경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평소에는 밤낮없이 공부했기에 그에게는 여가 생활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 속에서도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월급이 나쁘지 않은 직장에 자리도 잡는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고 있던 그이기에 이번 축제에 대한 기대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렇게 사무실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머리를 감싸고, 잠시 눈을 감았다.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몇 시간이나 공부하다가 귀가 아파 귀마개를 빼고 기지개를 켰을 때, 축제―라는 두 음절이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의 옆에 앉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소곤소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조용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로써는 모르는 게 당연했지만, 매년 한 번씩 이 도시에서는 커다란 축제가 열리고, 그곳에서는 불꽃놀이, 노점 등 온갖 행사를 다 한다고, 자신들은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는 등― 그런 이야기였다. 그 때 옆에서 떠들었던 그들은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는 씁쓸한 듯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축제에 갈 수 있겠지.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일에 착수했다. 하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그가 너무 착하다는 데 있었다. 하필이면 다음날까지 꼭 끝내야 하는 일이 한참이나 밀려 있었던 것이다. 물론 착실한 그는 이미 일을 깔끔하게 마친 상태였지만, 그의 직장 상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축제에 대한 생각으로 들떠있던 그들이기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들은 가장 말단인 그에게 자신들의 일을 맡기고 떠나버렸고, 그는 산더미 같은 일을 눈앞에 두고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했으나, 부모님 때문이라도 직장을 계속해야 했던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애써 그것을 누르고, 억지로 일을 붙잡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의 귓속에 펑,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불꽃놀이의 시작인 것이다. 그는 또다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야속한 대기는 그 소리를 지나치게 또렷하게 그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갈망했던 축제였는가, 그는 축제에 대한 말을 들은 그 순간부터 축제에 대해 상상해왔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빈틈없이 가득해있다. 먹을 것, 불꽃, 장난감, 술 등을 파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고, 사격, 다트 등의 놀이장도 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즐겁게 웃으며 돌아다닌다. 그렇게 사람이 많다면, 분명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랬다, 그는 외로웠다. 시골에서 올라와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던 그는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언제나 혼자였다. 도시는 좀처럼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축제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소리치며 즐기다 보면 이 외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악단이 공연을 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행사가 연이어 일어난다. 그렇게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올라가, 곧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불꽃을 수놓고, 펑, 하는 소리가 그의 귓속을 때린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든 그 순간, 분명, 또렷한 불꽃의 상이 그의 눈에 맺혔었던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둡고, 적막한 사무실은 간데없고, 어느새 활기차고 환성이 가득한 축제의 장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각자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화려한 옷을 뽐내며 사람들이 그의 곁을 지나간다. 문득 돌아보면 직장 상사, 학교 동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고 있다. 꿈인 것일까. 그래도 상관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축제의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피어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갈망해온 그의 축제 속에서.




 누군가 그의 몸을 흔드는 바람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무실이었다. 그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곧 그가 일을 다 끝마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허둥지둥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서류를 챙겼다.

 “괜찮으세요?”
낮선 목소리에 놀라 그는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어떤 군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멍한 정신으로, 설마 일을 다 끝마치지 않아서인가, 라고 잠시 실없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죠?”

 그러자 그 군인은, 갑자기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축제에 테러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그 테러리스트가 엄청난 양의 폭탄과 함께 자폭하는 바람에 거의 전원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지금 구출 중… 아니, 왜 그러십니까?”

 그는 웃었다.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튀어나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더니, 그의 책상 위의 서류 뭉치들은 내려다보았다. 아이러니했다. 결국 어제 축제를 즐긴 사람은, 축제에 가지 않은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서류 뭉치를 들어 창가 쪽으로 몸을 옮겼다. 거리는 낮이 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어제와 전혀 다른 게 없어, 마찬가지로 유령의 도시를 연상시켰다. 그는 창문을 열고는, 서류 뭉치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여전히 멈추지 않고 웃으며 사무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그 뒤를, 한 군인이 어리둥절해하며 따라 가고 있었다.

 하얀 종이들이, 마치 불꽃처럼 춤추며 거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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