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이후 은희경의 소설을 많이 기다려왔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던 소녀의 냉소는 이제 없다. '새의 선물'이 문제 제기였다면 3년만에 출간된 이 소설은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혔다시피 젊은 날 거짓과 고독, 헛된 열정에 대한 마지막 사랑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형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구속이었다고 생각하고, '돌아온 탕아'처럼 객지를 떠돌던 아우는 자신이 항상 두 번째였다고 체념한다. 아버지의 유언을 통해 집안의 비밀과 거짓말은 조금씩 그 존재를 드러낸다. 거짓말엔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숨어있기 마련이고, 필연적으로 '비밀'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거짓말의 반대말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며, 거짓말은 사실보다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거기에 붙어있는 '비밀'이라는 봉인을 굳이 떼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가 조각퍼즐처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수록 질문은 더 많아진다.읽어나가기 참 더딘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책을 두 권이나 더 읽었으니 말이다. 맛깔스런 문장은 여전히 나에게 감탄을 주었지만 두 형제의 시선으로 처리된 복합적 구성과 결말부에 드러나는 비밀들이 크게 흥미를 주지 못하는 난해함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덮고 나서도 정리가 안 된 듯한 혼돈을 주는 책이었다.그렇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문제 의식과 예민한 감성 표현들이 나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전해 주고 있다. 그녀는 역시 대단한 글쟁이이다. 필경 더 나은 작품으로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