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 마로니에북스 3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청림출판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뭐랄까... 한없는 환상 속에서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같았다. 현실성 없는 인물처럼 느껴지는 시마무라와 고마코, 그리고 요오코... 인물에 대한 묘사는 지겨우리만치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면서도 사건들이 일어난 행간의 시간들은 몇 일, 몇 달, 몇 년을 뛰어넘고 있어서 읽으면서 정신을 놓쳐버리면 어리둥절해지고야 마는 일이 허다했다. 그럴 때면 급히 아뿔싸 하고 몇 줄을 더듬어 올라가곤 했다.

어느 소설에서도 여주인공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입술을 환형동물과 비유해 놓은 소설은 보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고마코의 외형을 그리는 여러 장면에서 이러한 비유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적인 표현은 나의 머릿속에 어느 여성보다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고마코를 떠올리게 했다.

주인공들의 성격은 일본인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듯 했다. 전혀 속을 직접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주인공들의 성격은 관계에서도 그대로 이중적인 관계로 드러났다. 아내가 있으면서 고마코 그리고 요오코에게까지 이끌림을 느끼는 시마무라, 춤 선생의 아들이라는 약혼자가 있으면서 - 비록 춤 선생의 무언의 압력일 뿐이었다고는 하지만 - 시마무라를 향해 몸을 던지는 고마코, 고마코와 약혼자의 관계를 알면서도 죽어가는 약혼자에게 헌신하는 요오코...

이들은 실상 하고 싶은 말은 마음 속에 묻어두고 항상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흡사 동문서답과도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것이 일본인들의 문화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신비주의 같은 느낌에 빠지고 말게 되었다.

결국 이 소설은 이렇다할 사건 없이 끊임없이 눈 내린 고장과 사람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다가 관계 설정이 막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때쯤에 끝이 나 버렸다. 그래서 나는 허탈함과 함께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이상하게 이 소설을 쉽게 잊어버리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사건은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그렇게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채 계속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이 오는 한 시마무라는 또 이 고장에 들를 것이고 고마코를 만날 것이다. 늘 그랬듯이... 늘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이 고장에 와 있고 또 관계를 맺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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