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존재들 때문에 작가는 겨우 쓴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잘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부터 우리 안에 태동했을 것이다.
어린이가 미지의 어른을 품고 자라나듯, 어른도 지나간 어린이를 품은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유년은 영원히 반복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글의 빈틈을 언제나 찾아내고 메꿔주는 엄격한 편집자들, 나보다 한 세대 앞서 생을겪어온 베테랑 편집자들도 예전엔 콧물 흘리는 어린이였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엄청나게 웃기고 애틋한 마음이 된다.
한때 어린이였던 우리가 모여 책을 만든다. 각자의 고집대로 정돈한 책상 위에서 문장 하나, 단어 하나, 마침표나 쉼표 하나에 매달리며 일한다. 종이책 읽는 독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 시대에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늘 최고의 책이다. 책을 만드는 우리의 마음속엔 어린이도 있고 할머니도 있다. - P203
"제안을 하나 드립니다. 약간 느슨한 협회를 만드는 거예요. 삶이 감당이 안 되는 사람들의 모임. 그런 모임을 만들어서 각자 상황을 얘기해보면 어떨까. (…) 세상의 모든일루수한테 마음을 조금 보내주는 거죠. 마음을 조금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모르는 사람이어도 그 사람이 처한 상항을 서로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인생을 감당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 보면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일루수다. -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