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나는 고통 너와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나—내 불, 내 침대를 같이—아, 끔찍하게도—머리를 같이 쓰며?—게다가 내가 먹으면 너까지 먹이면서?"_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_8쪽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껴가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머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_213~214쪽, ‘가리는 손‘ 중에서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_214쪽
"비관주의자들은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책을 만들고 책 읽기를 일상으로 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세계를 향하여 이성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니까요."(165쪽)
오늘은 8월 첫날이다. 뜨겁고 푹푹 찌는 습한 날씨다. 비가 온다. 시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하지만 언젠가 원고 거부 쪽지에 씌어 있던 말이 생각난다. "폭우가 한번 지나가고 나면, ‘비‘라는 제목의 시들이 전국에서 쏟아져들어온답니다"라고.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_125쪽, ‘침묵의 미래‘
번번히 오염되고 타인과의 교제에 자주 실패해야 건강해질 수 있었다. 물론 가끔 회복될 수 없는 실패도 있었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영은 없었다. (126쪽)
나는 그들에게 미소로 답한다. 그게 우리의 직업이었으니까. 웃는 것, 또 웃는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 (133쪽)
그는 말과 헤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말과 잘 사귄 것도 아니었다. 말은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혼자 하는 말이 아닌 둘이 하는 말, 셋이 하면 더 좋고, 다섯이 나누면 훨씬 신날 말. 시끄럽고 쓸데없는 말. 유혹하고, 속이고, 농담하고, 화내고, 다독이고, 비난하고, 변명하고, 호소하는 그런 말들을•••••• (142~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