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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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무섭다.
느닷없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이 무섭고,
청춘이 무서워졌다.

춘천춘천춘천..... 자꾸 말하다보면,
어느덧 청춘이라는 말이 씹히고
청춘청춘청춘.... 또 맥없이 되풀이하다보면,
어느덧 다시 춘천에 이르는데,

춘천이란 곳은,
내가 아는 만큼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었고,
청춘은 내가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는 바,
결코 생기발랄 명랑쾌활,
행복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생 최고의 시절은 아니었다. 결코.

오히려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하고 서럽고 울컥한ㅡ
나는 가슴이 터질 것처럼 혼자 아프고 미쳐가는데,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은 다들 적당히 늙은 얼굴로,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계절, 청춘.

이 책 속에서 한 필자가 말한,
‘그 지겹고도 뜨거운 청춘’이란 말이
지금의 내게는,
어찌나 또렷하게 마음에 와 박히던지.......

사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춘천의 이미지는 얼마나 허황한가.
욘사마와 겨울연가,
경춘선에서 싱글벙글 웃고 떠드는 생글생글한 젊은이들의 이미지,
강촌역에 시끌벅적 울리는 희망찬 목소리들.....

하지만 이것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초라하고 먹먹한 청춘의 시절과는
정말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것인지.

그러나 이 책은 괜찮다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준다.
TV에서 선전하는 춘천은, 청춘의 이미지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다들 이미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진실.
춘천은 상처와 고독의 도시라고.
청춘은 봄처럼 조용하고 고요하고 파릇파릇한 시절이 아니라
삭힐 길 없는 분노와 잠들지 않는 아픔으로
끝없이 뒤채는 시절이라고.

그러니,
어딜 가든 엿 같은 사람들이 한 다스씩 득시글거리는 이 대도시에서
어느 날 문득
너무 상처받고 지쳐서 견디기 힘들어지면,
언제든 돌아와 한숨 쉬고 울다가도 좋다고.

이 책은, 이 책 속의 내가 사랑하는 작가 군단들은
춘천의 맑은 호수에 몸을 흠뻑 적신 채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춘천은 화려함과 북적임보다는
수줍음과 망설임과 상처와 고독을 간직한 도시임에 틀림없다.
 

춘천의 호수들은 끊임없이 한숨처럼 안개를 피워올리고,
고민은 많은데 무엇을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청춘들은
그 호수를 바라보며
술에 취해, 고민에 절어,
그 안개보다 더 뿌연 한숨을 토하며
그 호수들보다 더 깊은 눈물을 뿌리는 곳-
그곳이 춘천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상처와 고독과 우울을 혼자 대면하는 것이 두려워,
춘천에는 꼭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고,
연인과, 대학 선후배들과, 좋은 친구들과 몰려가야 한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돌아보면,
내가 춘천에 웃으며, 환호하며 손잡고 갔던 이들은,
다들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혼자 춘천에 가고 싶어졌다.
이 책에 나오는 혼자 가기 적당할 듯한, 호젓한 명소들에서   

이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청춘을 돌아보며,
조금 더 용감하게, 꿋꿋하게,
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며,
이 청춘을 버티고 싶어졌다.

올해는. 
 내가 꼭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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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2009-02-2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멋진데요 ^^

하모니카 2009-03-02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좀 울컥, 하는 것들이 많아서, 부끄럽지만, 이런 글을 쓰게 됐네요. 좋은 책입니다. 청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도....

향기 2009-07-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천 갈 때 저도 데려가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