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날의 예감이 있다. 똑같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력하게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할지라도, 유독 더 힘겹고 불행이 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몸이 계속 무겁고, 피부는 불길한 느낌으로 예민하며, 말은 입이 아닌 머릿속에서 맴도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몰아닥칠 불행을 도저히 받아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이고 만다. (14쪽)
나는 모멸감과 피로로 당장 쓰러져버리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멸시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예이츠의 시구가 떠올랐다. "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46쪽)
응급실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곳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나만 견디고 참으면 그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일해야 하는 긴 밤과 하소연할 곳 없이 망가진 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밤은 산 하나를 지나듯 간신히 넘어갔다. 아침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48쪽)
나는 심상치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서, 원래 세상 일이란 인간들의 육신이 이토록 부서지고 시들어가는 과정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의 변주를 의연하게 눈 하나 껌뻑하지 않고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유난한 날이었다.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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