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허지웅 지음 / 아우름(Aurum)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지웅의 신작이 나왔다길래, 뭘까 관심 갖고 지켜보다가 이 제목을 발견했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기분이, 묘했다. 

마치 많이 좋아하다 차인 옛애인의 카톡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 책은 허지웅의 신작이라기엔, 

뭐랄까 이미 글깨나 읽는 사람들한테는 일종의 레전드 같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허지웅이 쎈 멘트로 가루가 되도록 까일 때도, 

한 트위터리안이 그랬던가. 

'허지웅을 까는 건 니들 맘이지만, 나는 허지웅이 쓰는 개포동의 김갑수씨는 읽어야겠다. 그만해라 이 새끼들아'

라고.

연재할 때부터 허지웅의 새로운 글쓰기 실험처럼 보였던 이 책.

그러나 웬일인지 허지웅은 몇 년간 갑수씨를 떠나 있더니, 돌연 연재가 아니라 책을 들고 나타났다.

갑수씨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고. 혹은 글쟁이 허지웅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고, 일 수도. 


책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개포동의 김갑수씨는 괴물이었을까요?'

허지웅의 경고멘트다. 

책장을 열면, 당신은 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괴물에 지레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놓아버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세상에 이런 인간이, 이런 소설이 다 있느냐며 눈이 동그래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작품 속의 허지웅이 그러했듯, 

아마 독자들도 개포동의 김갑수씨를 이해했다가 끔찍해했다가, 결별하고 싶다가, 문득, 그리워질 것이다. 


개포동 정자왕, 세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하는 사내, 

상처받고 상처 주고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읊조리며 혼자가 된 허지웅에게,

너무도 뜨겁고 눈물겨운, 위로인지 공감인지를 건네는 갑수씨....


아니다, 위로나 공감, 같은 거라고 말하기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갑수씨와 허지웅이 나누는 대화는 너무나 아름답고 깊다. 

위로나 공감이, 서로의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어느 순간 맞닿아 시혜적인 느낌으로 건네는 것이라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갑수씨와 허지웅은 서로가 서로가 되어 말을 주고받고 '가끔 깨닫고 대개 까먹는' '도저히 이어붙일 수 없는' 그래서 슬픈 삶의 진실에 대해, 주고받는다. 


마지막 장에서 이게 갑수씨가 한 말인가 허지웅이 한 말인가 따옴표도 없이,

마치 한 편의 긴 시처럼 글이 쓰여진 것은,

아마도 마지막에 갑수씨가 허지웅이 되고 허지웅이 갑수씨가 되며,

돌연 이 책을 읽는 자신조차 갑수씨와 하나가 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하는 데 탁월한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구어체 입말투의 술술 잘 읽히던 허지웅의 문장은,

마지막에 그렇게, 시가 된다. 


사실 전에 연재를 읽을 땐, 이렇게 끝날 줄 몰랐다.

시간의 힘일까.

오랜 기간 갑수씨를 자기 안에 품고 산 허지웅은 이렇게 

갑수씨를 한 뼘 더, 성장시켜 책으로 완성해 나타났다. 


작가 허지웅에게

갑수씨의 이야기를 완성해줘서 고맙다, 라고 하려다,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을 테니. 

허지웅도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지금은 또 마치 이 띠지의 모습처럼 유명인 혹은 인기인이 되는 이 엄청난 삶의 풍랑 속에서,

갑수씨의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품어오고 성장시키고 완성해내가는 과정에서,

아마도 아주 많이 고단하고 힘들었겠지만, 

또 한편으론 갑수씨로 인해 얻은 것도 많을 테니까.


허지웅의 다음 소설을 기다린다. 

그는 나를 감탄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고 웃기고 울리는, 

'글쓰는' 허지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