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어떤” 판타지를 사랑하는가. _ 환상의 이야기

 

우리는 누구든 판타지에 열광한다. 잘생긴 남자 혹은 여자 배우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의 판타지를 좋아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거나 유명한 작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버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판타지는 그리스어의 판타시아(phantasia, <영상>, <상상>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으로 환상을 의미하는데, 문학에서는 몽상적인 이야기 전반에 붙은 명칭이다. 우리는 가지기 힘든 것 혹은 지금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그들에게 자신을 대입해보거나 도달해야할 지향점으로 삼으며 희망을 가진다.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의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환상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타지가 존중받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잊고 환상 속으로 도피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피해 혹은 불쾌감을 주는 판타지를 대중은 현실에서 도피한 패배자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적정선”을 지키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은 미덕의 경쟁력을 가진다. “있음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 허황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현실에 충실하여 비관적이지도 않다. 누나를 생각나게 하는 한 여자를 우연히 만난 후 싸우고 몇 년 동안 연락도 안하던 누나에게 연락을 했더니 알고 보니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더라는 이야기, 자신의 아들이 죽은 해변가에서 그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그의 아들처럼 보이는 외발서퍼를 보았다는 이야기,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곧잘 잊어버렸던 한 여인의 이야기들은 지나치게 무덤덤한 소설의 주인공들의 일상에 특별함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기이한 사연으로 한 번쯤은 들어볼만 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오묘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은 ‘나도 이런 신기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아’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은 이 기시감에 공감한다.

“있음직한” 이야기의 미덕 외에도 <도쿄기담집>이 가진 판타지는 “누구나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판타지라는 감미료를 살짝 얹어 내어 읽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말랑말랑함을 가지고 있다. 그의 기담집 이야기들 중 ‘날마다 이동하는 콩팥 모양의 돌’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버지에게 인생에서 의미 있는 세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준페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자신의 짝에 대해 고민한다. 인생을 통틀어서 3명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의미를 주는 것에 엄청 많이 고심한다. 첫 번째 의미 있다고 생각한 여자를 떠나고 그는 더욱 불안감을 느끼며 두 번째 여자가 떠나간 후에 그는 오히려 공포감에서 벗어난다. 그의 세 여자는 운명의 세 여신을 생각나게 한다. 과거의 한 여자와 현재 만난 두 번째, 그리고 미래에 만날 마지막에서 콩팥 돌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콩팥 돌 소설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감정이 가진 아픔을 극복하듯 준페이도 마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딛고 올라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각각 다른 것을 추구한다. 사랑을 하는 방법도 다르고 꿈꾸는 법도 다르고 상상하는 것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판타지 속에서 현실을 살아간다. 가끔은 다른 이의 판타지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면 <도쿄기담집>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그리고 만족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