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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우
이노우에 히로키 지음, 박선형 옮김 / 로즈윙클프레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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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인 북해도의 풍광에 눈이 시원해진다. 게다가 마침맞게도 캄차카에서 넘어온 이 한파 속에서 보는 이런 광활한 사진들이라니. 손이 닿은 곁에 두고 생활이 헝크러지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아무 페이지라도 열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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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anced Style 어드밴스드 스타일 - 은발의 패셔니스타가 왔다
아리 세스 코헨.마이라 칼만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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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인기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아웃도어 의류의 한 유명 브랜드 TV 광고를 보면

패션은 옷으로 하는 자기소개다라는 의미심장한 카피가 나온다.

어떤 옷을 어떻게 입어야 자기를 제대로 잘 소개하는 것일까?

비싼 옷이나 명품을 걸치면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달될까?

 

우리 외할머니는 처녀 적 삼동리 최고 미녀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사실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할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손녀의 눈으로 봐도 그렇게까지 미인은 아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그 말을 믿었던 이유는,

외할머니는 일흔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

날씬한 몸매에 항상 등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다니셔서

뒤에서 보면 아가씨로 착각할 정도로 진짜 멋쟁이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보면 '스타일이란 적절한 꾸밈새와 적절한 태도라는 말이 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너무나 동감되었던 게

외할머니는 할머니라고 해서 당연한 듯 뽀글뽀글 파마에 몸빼바지를 걸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엷은 화장에 고운 블라우스를 차려 입으셨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질하여 묶지 않으면 방을 나서지 않으셨다.

그 연세에도 언제나 발끝이 일자가 되도록 신경을 쓰며 한걸음 한걸음을 놓으셨기에

한 번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팔자걸음 걷는 걸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나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외할머니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종종 생각했다.

 

이 책에는 우리 할머니 같은 삶의 태도를 지닌 패셔니스타들이 매 페이지마다 줄줄이 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소품들로 자신을 꾸미는 것에 대해

주책이라고 여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패션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패션이 옷으로 하는 자기소개라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일을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할 이유는 없다.

또 자기소개가 꼭 젊고 몸매 좋고 얼굴 아름다운 사람들만 해야 하는 특권도 아니니까 말이다.

 

패션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스스로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고,

그렇기에 자신만의 패션 철학이 제대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어드밴스드 스타일> 주인공들은 명쾌하게 보여준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어드밴스드 스타일>의 책장을 넘기며

때로 화려하다 못해 놀라운 복장을 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 이유는

비록 패션 스타일은 다르지만 너무나 비슷한 태도로 인생을 살아온

우리 외할머니의 삶을 눈앞에서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나에게 노년의 롤모델은 외할머니였고, 이제는 <어드밴스드 스타일>의 모든 사람들이다.

 

우아한 태도와 당당함으로 나이 듦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면 모두 다 이들 덕분이다.

외할머니가 살아생전에 이 책의 주인공들을 만났다면 베프가 되지 않았을까?

인종과 언어를 넘어서 간지는 간지를, 스타일은 스타일을,

멋쟁이는 멋쟁이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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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질투
이자벨 라캉 지음, 김윤진 옮김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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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무엇을 질투한 걸까?
예쁜 표지와 제목, 그리고 작가의 이름에 혹해 읽게 된 이 책은 사실 한 번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종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끝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기는 했다. 이 책의 장점으로 가장 먼저 꼽고 싶은 것은, 독자를 끝 페이지까지 끌고 가는 이자벨 라캉의 스토리텔링의 힘은 별도로 하더라도, 각각의 캐릭터가 생생하고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구한말의 격변의 조선에서 유럽으로 파견된 사신 일환과 살아있는 영혼을 가진 프랑스 여인 엘레나의 짧지만 평생을 간 사랑. 그리고 우울하고 야누스적인 내면을 가진 일본 스파이 러시아인 도토로프. 신비로운 신기를 가졌지만 한편으론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로 낯선 환경에 대한 탁월한 적응력을 뽐내는 시종 유복. 100년 전 인물에 대한 생생한 복원이 눈부셨다. 또한 이 책만의 특징은 마치 연극의 지문처럼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생각이나 느낌이 괄호 안에 별도로 써서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이다. 캐릭터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압도적인 이 책은 한편으론 절대 유머가 부족하지도 않다. 일환의 시종인 유복에 얽힌 스토리는 느슨한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독자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훌륭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하나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탐구의 부족.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다정한 호의를 갖고 묘사하고는 있지만 몇 개의 이미지에 매달린 조선에 대한 이해는 그 깊이와 폭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는 한국계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계 프랑스인이라는 것은 결국 프랑스인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으로써는 절대 낭만과 여유로 회고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낭만적이고 서구 중심적인 사고로만 본 시각이 아쉽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인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서재필에 대한 팩션과 우연찮게 시기적으로 맞물리는 소설이라 아무래도 겹쳐보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대해 한국인이 결코 낭만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라고나 할까.
아름다운 소설이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하지만 FTA문제로 예민해져 있는 내 상태가 문제이다.
사실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무엇이 무엇을 질투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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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광야에 서다 - 제1회 디지털 작가상 역사.팩션 소설 부문 당선작
고유 지음 / 문이당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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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길이 항상 영광스럽지는 않았다

19세기 말 조선은 끔찍한 상황이었다. 사방은 열강들에 둘러막혔고, 그 안에서 조선이란 나라는 더 이상 존속할 힘이 없어 보였다. 당장이라도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백 번의 외세의 침략 속에서 이다지도 막막한 적이 있었던가? 게다가 하나의 적을 상대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서양의 강대국들과 동양의 새로운 열강들이 벌떼처럼 이 작은 땅덩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드디어 이제는 그만 왕조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갈려야 될 때인 듯싶었다.
벌레처럼 밑바닥을 구물구물 살아가던 백성들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몰랐다. 그저 사는 게 나날이 힘들어간다고만 생각했다. 뭔가 흉흉하다고도 생각했다. 나랏님이 하라는 대로 부역도 하고 세금도 바치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사실 나라를 다스리시는 높으신 분들도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보려면 볼 수도 있고 들으려면 들을 수도 있으련만 지금 이 순간이 편하고 놓치고 싶지 않아 그저 눈 감고 귀 막고 이대로 내 한 평생 일족들과 호의호식하면 살겠거니 걱정 따위는 밀쳐버렸다. 그렇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왕국, 조선이 깊은 멸망을 향해 천천히 굴러 내려가는 때였다.
그 암흑 같던 시기, 최초로 근대적 쿠데타를 일으킨 혁명가였고, 최초로 서양 의술을 배운 의사였으며, 최초로 사설신문을 창립한 언론인이었던 사람이 있다. 소설 『서재필 광야에 서다』는 바로 그 험난한 최초의 길을 걸은 투사 서재필이 오랜 미국 망명 생활 끝에 조선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팩션을 좋아하는 탓에 집어든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눈앞에서는 요즘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작태가 오버랩되었다. 사실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뭐가 다를까? 여전히 위정자들을 믿을 수 없고, 그 정책은 이해되지 않으며 정치가라는 게 도대체 누구의 이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단체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요즘 안 그래도 시끄러운 광우병 사태와 맞물려서 이 책이 허투로 읽히지가 않았다. 뭐든지 시작은 작은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바늘만 팔겠다고 사정하며 팔다가, 바늘을 파니 은근슬쩍 실도 끼워 팔다가, 그 실로 꿰맬 옷감도 필요하지 않겠냐며 스리슬쩍 밀어 넣고, 이내 옷 만드는 공장을 번듯이 세워 내국인을 착취하며 큰소리 땅땅치는 식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또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위정자들은 죄다 등산가만 있는 건지 “안 돼요, 안 돼요, 돼요, 돼요, 돼요” 메아리나 지르고, 국민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눈 뜨고 앉았다가 뒤통수 맞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사실 나 역시 그 동안 나 살기 바쁘다고 정치에 둔감하고 내 주머니와 상관없으면 니 주머니야 깨지든 말든 참견하면 오지랖이려니 하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열심히 내 앞가림이나 하며 살터이니 정책이며 외교며 귀찮은 것들은 좀 알아서 해달라는 명백한 책임 전가를 당연시 여기며 지금까지 외면했다. 4월 총선의 최악의 참여율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스스로 방기한 책임과 의무가 기어코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구나 싶다.
구한말의 어이없고 원통하던 시절, 그 원통함의 크기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이, 그래도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인물들이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으며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졌다. 서재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최초의’라는 수식어가 그렇게 고통이 될 줄은 몰랐다. 그도 미리 알았다면 가능하면 그 길을 피해 걸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걸어야 되니 걷는다는 그 우직함에 대해, 수혜를 받은 나로서는 그저 고마울 밖에 다른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역사는 여전히 현재를 보여준다. 그러면 이제는 어떡해야 할까? 하도 세상이 흔들리니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위정자들의 주장도 언론의 보도도 나의 판단도 믿을 수가 없으니, 어디 누구 믿을 만한 사람 없을까 찾다 보니 웃음이 나온다. 복잡하고 귀찮다고 타인에게 판단을 유보했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을 뻔히 눈 뜨고 바라보면서 또 다른 초인(超人)을 찾는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서재필, 그가 걸은 길에 대해 누군가는 걸어야 할 길, 오욕으로 범벅이 되어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매어야 할 총대라고 그럴듯하게 말하면서, 나는 이번에는 누구에게 그 길을 걸으라고 등 떠밀어 떠넘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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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기술
제니스 A.스프링 지음, 양은모 옮김 / 메가트렌드(문이당)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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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의견이 달라서 마찰이 있었을 때 잘잘못 문제가 아니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또는 내 의지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상대방의 잘못으로 일방적인 상처를 받았을 때조차도,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먼저 손을 내밀고 무조건 용서하여 평화로운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화해는 해야겠는데 (감정적으로는 절대) 용서하거나 사과할 수 없는 감정의 부대낌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미안한 게 있어야 사과를 할 것이고, 아니면 잘못한 상대방이 용서를 구해야 용서를 할 것인데, 난 미안하지 않고, 상대방은 지 잘못도 모르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내 속의 화는 더욱 커진다.
그런데 이 책이 참 고마운 말을 해줬다.
용서할 수 없으면 말란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거기다가 더 좋은 말도 해줬다.
용서할 수 없다는 내 마음의 상태를 깨닫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바로 용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단다.
사회적으로 학습된 위조양심까지 많이 위로가 된다.
이 책은 단계별로 용서를 나눈다. 그리고 꼭 끝까지 클리어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람마다 개인이 견딜 수 있는 고난의 정도와 처한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모두 동일하게 화평한 상태까지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걸 요구하면 시작이 틀렸다.

* 상처 입힌 것을 사과할 수 없거나 사과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하는가?
* 후회하지 않는 가해자와 어떻게 화해하고 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가?
* 용서할 수 없으면 어떻게 피해를 잊을 수 있는가?
* 용서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 혼자만의 일인가?
* 용서는 언제 가식적이며 언제 순수한가?
* 가해자는 용서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가해자가 나의 용서를 구하도록 어떻게 격려할 수 있는가?
* 자기 용서란 무엇인가?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용서해야만 한다’는 고전적인 과제를 신선하고 독창적으로 접근했다는, 책 자체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 있겠지만,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용서의 방법을 제시해줬다는 면에서 내 개인의 실생활에 도움이 됐다.
특히 ‘수용’이라는 개념을 허용함으로써 증오와 허무한 거짓용서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수긍할 수 없는 허술함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건설적인 또 하나의 단계를 위치지어 주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를 증오하면서, 또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하면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내 감정과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하는 것뿐이다. 차라리 상대를 용서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까지 괴롭히지는 않아도 된다면 내 생활이 좀 더 행복하고 충실한 상태가 될 것 같다.
완전한 용서. 아직 난 잘 모르겠다.
가능하면 고맙지만, 안된다면 적어도 나 자신이라도 사랑하고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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