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쇄신 -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법을 제시하다
네이선 가델스.니콜라스 베르그루엔 지음, 이정화 옮김 / 북스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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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은 늘 굴러 왔던대로 굴러간다.

사회 전반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메우지 못할 심연의 괴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언제나 거대한 변수로 작용하는 중국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근본적인 답은, 늘 그렇듯이 뿌리부터 변화시켜 나가는 것에 있다. 문제점을 알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이들이 사회 변화를 이끌고 주도해야한다. 단순히 1번을 찍느냐, 2번을 찍느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인과 기득권에 압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정당활동이 아닌, 주체적인 참여로서 이뤄내야하는 쇄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적 토대에서 이러한 쇄신의 과정이 얼마나 가능할지는 여전희 의문으로 남는다.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이해, 디지털로의 급속한 이행, 그리고 중국이라는 변수 등 다양한 문제점을 어느 수준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논의의 출발점과 질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우리의 논의는 한국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한국정치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모색하는 일은 또다른 통찰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에게 맞는, 한국사회를 위한 민주주의 쇄신의 모델은 또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당연히 유권자인 시민들, 즉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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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 경계 없는 노동, 흔들리는 삶
이승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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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며 현장에서 밤새워 일하던 때가 있었다. 번번히 지연되는 시간으로 하루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새벽 첫 차를 타고 퇴근해 밀린 잠을 몰아자고 다시 촬영을 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렇게 일하는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 그 정도 힘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특수고용노동자이자 액화노동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영화현장을 떠난 지금은 내가 있었던 환경의 진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앞에 도착한 택배,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a 오가면서 일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 등 사회와 기술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노동시장은 누군가의 돈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질을 희생해가며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결코 일상 속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저자 이승윤은 학자로서의 면밀함과 꼼꼼함으로 우리 곁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노동문제를 파고든다. 그는 각종 복지와 고용제도가 급속도로 변화한 노동시장을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불의의 사고들을 마주하면서, 한국사회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노동문제라는 숙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가짜 자영업자, 이중빈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좁히기 힘든 간극, 복지제도와 노동환경과의 괴리 등, 우리사회에 산적한 노동문제는 마치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한 고용보험 제도 개편과 효율적인 직업훈련 제도의 마련 등 곪아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가지 해법과 대안들이 하나씩 제시된다.

그러나 쉽사리 좁히지 못하는 이론과 실천의 무한한 간극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발목을 끝없이 붙잡는다. 서구중심, 남성중심의 학계와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이론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노동자의 삶이 우리의 시선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책상 앞에 앉아 택배노동자가 전한 책을 편하게 훑고 있다. 텍스트 너머,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노동자와 호흡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이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에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노동이 우리 삶을 옥죄는 사슬이 아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서 자리잡는 사회를 꿈꾸는 인간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행동한다면, 언젠가 이론과 실천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들이자 딸이며, 우리의 친구와 이웃이라는 점을 우리가 자각한다면 현대의 노동문제는 결코 단신으로 처리되는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정체된 제도, 그리고 그 틈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문제의식을 함께할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 이승윤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텍스트는 그래서 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보는, 이론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작지만 큰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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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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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상대주의자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반문하면 이에 어떻게 대답해볼 수 있을까?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평등이나 정의, 공정 등의 보편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명과 사회는 각각의 집단이 지닌 특수성에 따라 저마다의 모델을 택할 뿐이다. 우리는 21세기 유럽이 고대 그리스보다 도덕적으로 더 진보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고, 조선 시대 여성의 지위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보다 낮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역사 속 여성의 지위는 단지 각 시대의 특수한 요구에 따라 변화한 것일 뿐이며, 여기에는 그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개입될 수 없다.”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다.

“그렇다면 과연 평등은 무엇일까?” 혐오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우리는 반대로 무엇이 평등이며 정의인지, 또 성평등한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의 저자는 여성 혐오를 근절시키기 위한 명쾌한 해법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은 외면하고 싶었던 성차별의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앞으로의 공동체가 꿈꾸고 나아가야 하는 평등의 세계란 어떤 모습일지, 끝없이 질문하게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 남녀체력검정기준이나 할당제 논란, 미디어에서의 재현의 문제 같은 현실적인 일들이 이미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질문과 답변 모두 우리들,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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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 진지한 민주주의자를 위한 선언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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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을 원리적으로 고수하는 워크(woke)의 사상적 이면에는 통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는 아이디어가 자리하고 있다. 이성에 대한 회의와 객관적 진리에 대한 부정, 권력과 사회구조에 대한 해체적 접근은 서구사회가 걸어온 계몽주의와 근대적 야망이 오늘날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고 백인남성 지배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서구문명의 역사는 해체의 철학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이렇게 이해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서구문명은 본질적으로 성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는 걸까? 모든 백인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특권을 가지며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가해자였을까? 보편적 인권이나 가치를 내건 슬로건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와 속임수에 불과한 걸까? 노예 해방과 여성 참정권 운동과 같은 진보의 역사는 정말로 지배계층의 합리적 통제를 위한 또다른 술수이자 기만인 걸까? 


수전 니먼의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워크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들이 계몽주의를 오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상들은 진보가 추구해 온 보편적 가치와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체성 정치는 부족주의를 부활시키며 모든 사회적 담론들을 성별과 인종의 블랙홀로 빨아들인다. 그리고 이 사상의 핵심적인 원류에는 미셸 푸코가 있다. 저자는 푸코의 주장을 분석함으로써 정치철학적으로 워크가 어떻게 잘못된 길을 걷게 됐는지를 보인다. 


이러한 주장에는 언제나 같은 방식의 반론이 잇따른다. “당신은 푸코를 오해하고 있다!”, “푸코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다!”. 글을 모호하게 쓴 사람이 잘못인지 아니면 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잘못인지는 분명 하나하나 따져볼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사회에서 이해하고 실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담론들이 오늘날 워크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력과 사회구조에 대한 무자비한 해체 이후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사회의 모든 측면-제도, 법률, 정치, 문화 등이 근본적으로 성차별과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거짓 논리로 가득차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이념이라는 게 과연 남아 있을까? 워크가 발판으로 삼은 사상적 기반은 이러한 점에서 자기모순적이고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는 파괴적이다. 대안이 없는 사상은 우리에게 그 어떤 유의미한 통찰도, 희망도 주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좌파는 워크가 아니다”.

"보편주의가 특정 이익을 은폐하는 목적으로 오용되었다는 것 때문에, 보편주의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

정의에 대한 주장이 권력에 대한 주장을 감추는 치장일 때가 있었다는 것 때문에, 정의의 탐색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

진보로 나아가는 여정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진보에 대한 희망 자체를 멈출 것인가?

실망이란 아주 절실한 감정이며,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실망을 직시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망을 우주의 구조로 읽어내어 거대한 의구심의 교향곡을 작곡하였고, 이것이 현재 서구문화의 배경 음악으로 흐르고 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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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워진다 - AI 시대, 인간의 미래
김덕진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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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하게 침투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존재론적 질문을 하게 된다.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쟁점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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