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 경계 없는 노동, 흔들리는 삶
이승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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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며 현장에서 밤새워 일하던 때가 있었다. 번번히 지연되는 시간으로 하루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새벽 첫 차를 타고 퇴근해 밀린 잠을 몰아자고 다시 촬영을 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렇게 일하는 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 그 정도 힘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특수고용노동자이자 액화노동의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영화현장을 떠난 지금은 내가 있었던 환경의 진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문앞에 도착한 택배,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a 오가면서 일할 수 있는 플랫폼 노동 등 사회와 기술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노동시장은 누군가의 돈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질을 희생해가며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결코 일상 속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저자 이승윤은 학자로서의 면밀함과 꼼꼼함으로 우리 곁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노동문제를 파고든다. 그는 각종 복지와 고용제도가 급속도로 변화한 노동시장을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불의의 사고들을 마주하면서, 한국사회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노동문제라는 숙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가짜 자영업자, 이중빈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좁히기 힘든 간극, 복지제도와 노동환경과의 괴리 등, 우리사회에 산적한 노동문제는 마치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한 고용보험 제도 개편과 효율적인 직업훈련 제도의 마련 등 곪아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가지 해법과 대안들이 하나씩 제시된다.

그러나 쉽사리 좁히지 못하는 이론과 실천의 무한한 간극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발목을 끝없이 붙잡는다. 서구중심, 남성중심의 학계와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이론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노동자의 삶이 우리의 시선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도 책상 앞에 앉아 택배노동자가 전한 책을 편하게 훑고 있다. 텍스트 너머,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노동자와 호흡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이론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이들에 공감하는 인간으로서, 노동이 우리 삶을 옥죄는 사슬이 아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로서 자리잡는 사회를 꿈꾸는 인간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행동한다면, 언젠가 이론과 실천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들이자 딸이며, 우리의 친구와 이웃이라는 점을 우리가 자각한다면 현대의 노동문제는 결코 단신으로 처리되는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정체된 제도, 그리고 그 틈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문제의식을 함께할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 이승윤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텍스트는 그래서 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보는, 이론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작지만 큰 발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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