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쪽
불어오는 바람이 벽면에 자란 무성한 잡초와 암탉의 솜털을 나란히 잡아당겨, 잡초도 솜털도 모두 바람 부는 대로 한껏 그 길이 끝까지, 마치 무기력하고도 가벼운 물체처럼 몸을 내맡긴 채 나부끼고 있었다. - P271

272쪽
바로 그 순간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 한 농부가지나갔는데, 그는 내가 휘두르는 우산에 얼굴을 맞을 뻔하자기분이 더 나빠져서는, 내가 "날씨가 좋지 않습니까. 걷기에좋은 날이군요."라고 말해도 별 성의 없이 대답했는데, 

그 농부 덕분에 나는 똑같은 감동이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272

271쪽
메제글리즈 쪽에서 내가 느낀 것이나 그 소박한 발견들을 결산해 본다면, 메제글리즈가 우연한 배경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필연적인 계시자였는지는 모르지만, 그해 가을이런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몽주뱅을 감싼 관목 덤불의 비탈길 가까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 인상하고 일상적인 표현 사이에 어떤 불일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던 것이 기억난다. - P271

275쪽
그때 나는 탐험을 시도하는 여행자나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망설이며 정신을 잃고는 창문을 통해 내게로까지 드리운 야생 카시스 나뭇잎 위에 달팽이의 자연스러운 흔적이 덧붙을 때까지 죽음의 길이라고 여꺼지는 그런 미지의 길을 내 안에 개척하고 있었다. - P275

283쪽
"이 끔찍한 늙은이에게 내가 뭘 해 주고 싶은지 아니?"
고 친구가 사진을 들며 말했다.
그리고 뱅퇴유 양의 귀에다 몇 마디 속삭였는데, 내게는 동리지 않았다.
"어머, 네가 설마 그런 짓을."
"내가 침을 못 뱉을 줄 알아? 이 사진에다가?" 하고 친구가일부러 거칠게 말했다. - P283

284쪽
물론뱅퇴유 양의 일상에서 겉으로 드러난 악의 모습은 너무도 완벽해서, 그 정도로 완벽하게 실현된 악의 모습을 사디스트 여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란 힘들 것이다. 오로지 딸만을 위해 살아 온 아버지 사진에 친구가 침을 뱉는 것을 구경할수 있는 곳은 시골 별장의 진짜 등불 아래서가 아니라 오히려도시 불바르 극장의 조명 아래서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멜로드라마의 미학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사디즘밖에 없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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